▲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1493~1582)은 초가삼간(草家三間)을 지어놓고 이렇게 읊었다. 나는 10년을 적금 부어 황토로 지은 토가삼간(土家三間)을 마련하였다. 축령산 자락의 휴휴산방(休休山房)이 그것이다.

아궁이에다가 소나무 장작, 편백나무 장작을 집어넣고 2시간 동안 달구어 놓으면 구들장이 쩔쩔 끓는다. 방문을 열어놓고 이 구들장에 앉아서 멀리 저녁노을에 잠겨 있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노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기쁨'을 느낀다. 옛날 고사(高士)들은 이러한 기쁨을 가리켜 '불환삼공지락(不換三公之樂)'이라고 하였다. 자연 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벼슬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배가 고프면 산방 뒤의 축령산 자락을 넘어간다. 산을 넘어가면 밥을 줄 사람이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인데, 이 길은 50년 동안 조성한 편백나무 숲길이다. 날씨가 흐린 날 아침에 이 길을 걸으면 편백의 향기가 길에 낮게 깔려 있어서 산보자의 온몸을 감싼다. 마침내 세심원(洗心院)에 도착한다. 축령산의 살롱이다. 지인들이 가면 마음씨 후한 집주인은 손수 기른 상추와, 손수 담은 된장에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을 내놓는다. 50대 중반의 집주인은 군청 공무원 하다가 그만두고 세심원에 들어와 아는 사람들 밥해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인생이다. 물론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너브실의 애일당(愛日堂)으로 간다. 대밭으로 둘러싸인 3500평의 고택인 애일당에는 15년째 백수로 살면서 내방객들과의 한담(閑談)을 업으로 삼는 집주인이 살고 있다. 마당에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인근의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모여 밤과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정수입은 없지만 결코 굶어 죽지는 않는 클럽이 바로 '방사클럽'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죽설헌(竹雪軒)에 모여, 연잎으로 싼 찰밥을 먹으며 방사(方士)들끼리 우의를 다진다. 월급 안 나온다고 굶어 죽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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