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1992년 12월23일 군대를 입대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날 훈련소에 온 것이다.

하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눈이 펑펑 밤새도록 내렸다.

첫날 그 어설픈 군인의 군복을 입고 내리는 창밖의 눈을 보노라니 과연 내가

제대라른 것을 할날이 있을까?   정말 갑갑 하고도 보이지도 않는 그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퇴소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녀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훈련소 따라 오면 고무신 거꾸러 신는 다기에 전주터미널에서 군대가는 것도 아닌것 같이 가까운 곳에 가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버스에 올라 오지 않았던가?  같이 훈련소 까지 올것을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그 밤에 나는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못할것 같은  두려움에 밤을 지세워야만 했다.

과연 내가 이 훈련소를 나가는 날이 오기나 할까...  그 것이 두려웠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 이다.

하지만 얻고 배우는 인생의 크나큰 차이는 사뭇 개개인 다를 것이다.

나는 군대라는 그 자체가 힘들다  생각한다.

누구나 힘들다, 누구나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차이는 사뭇 다르지 않다.

해병대, 특수부대를 나오고 힘들게 군 생활을 하여야만 군대 생활을 잘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멋진 군생활이라고 할수는 있지만 그 차이라는 것또한 별반 없다.

군대라는 그 안의 사회와 격리된 생활이 힘든것이다.

방위 생활도 나름데로 힘들고 취사병, 서무병도  다 나름 데로의 그 고충이 크리라.

군대는  군대 라는 그 자체가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들을 이겨냈다는 자체 만으로도, 몸건강히 잘 세월을 이겨 냈다는 자체만으로도 휼륭히 군생활을 잘 해낸 것이다.

 

 

 

 

 

논산 훈련소,후반기 교육을 5개월 받고 경기도 파주에서 나는 기갑부대,  전차 조종수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를 그 때처럼만 했으면 아마 고시라도 합격했을 것이다.

배워야할 것도 많았지만 외워야할 것도 많았고 연이은 훈련과 밤의 근무, 나의 신병생활은 그저 냄새나는 그 구막사 화장실에서 그녀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받을을 뿐이지

다른 어떤 곳에서도 희망을 찾기는 힘들었다.

그 힘겨움은 군대를 갔다온 사람만이 알아줄 것이다.

 

1994년 ..

어느덧 내가 군입대를 한지도 20개월 가까이 흐른 것이다.

상병6호봉 까지 오르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 그리고 밤이슬을 맞으며 아내을  얼마나 그리워 했던가.  거꾸로 돌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했는데 나에게도 그런  똑같은 시간 이었지만 왜 그리도 더디게 갔던 시간들 이었던가...

병장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았다.  고참들에게도 인정 받고 나름데로 나의 위치도 굳건히 다져진 그런 시간이었었고 군생활도 이제는 꽃을 조금씩 피울때가 된것이다.

아직 제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 이병, 일병 때에 비하면, 갓 상병일때에 비하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때가 상병 6호봉 때이다.

이제 병장도 채 2달이 남지 않았다.

그러던중  내 인생의  관점과 군생활을 확 뒤바꾼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군생활중 일상같았던 사소한 일때문에 나는 영창을 15동안 가게 되었다.

 

 

그 밤에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일주일에 2~3 통씩 편지를 보냈는데 15일을 보내지 않으면 걱정을 하겠지.

적당한 분량으로 훈련중이고 바빠서 그런다고 군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나는 아주 잘 지내는 것처럼 편지 3통을 썼다.

후임에게 5일 간격으로 부치라는 당부를 꼭 전했다.

그리고 날짜는 다르게 썼고,   보고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티코 안이다.

간밤에 거의 잠은 자지 않았지만 전혀 피곤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긴장도 긴장 이었지만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 뿐이었다.

그래.  15일만 버티면 모든것이 끝나는 것이겠지..

어쩌면 희망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대장과 선임하사.

좁은 티코 안에는 흘러 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처음 듣는 이 노래는 나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귀에 너무도 간절하면서 아쉽게 들려오는 이 노래는 무엇인가?

그것은 팝송이었다. 애절하면서도 리듬이 서글픈 이 팝송은 무어란 말인가?

전주가 길면서 애답게 부르는 이 여가수의 목소리는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소대장에게 다시 한번 틀어 주기를 부탁 했다.

한번 더 들으니 너무도 좋았다. 제목을 묻자 " 포논 브론디스의 what,s up " 이란 것이었다.

너무도 좋아 두 번을 더 들으면서 목적지를 향했다.

 

 

 

 

지옥같았던 영창에서의 15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 견디고 버티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분명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괴물이 사는 곳이 아니었기에...

 

드디어 15일이 지났다.

어떻게든 시간은 분명히 가는 것이구나. 고맙다   감사한 시간아...

훈련복을 벗고 다시 내 군복으로 갈아 입었다.

 

소대장이 두부를 건냈다.

나는 고맙지만 치워 달라고 했다.

두부는 죄 지은 사람이 먹는 것이지 나는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소대장의 티코에 올랐다.

시동을 켜고 출발을 하는데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 포논 브론디스의  what,s up " 이었다.

계속해서 리바이얼로 나오고 있었다.

내마음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준비 하셨을까?

김상병과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아니 흘리고 싶었다...

 

 

 

지옥같았던 15일을 이겨내준 그 명곡,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팔에서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명곡    [4 Non Blondes] 의 WHAT,s up 을 신청합니다.

 

 

 

참 그녀는 지금도 제 옆에서 아내라는 이름으로 곁에 잘 있습니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 아들이 8월에 군대를 갑니다.

오랜 시간 견뎌준 아내 김지영에게 이공간을 빌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덕분에 항상 귀한 방송 잘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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