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역뒤

안양역 뒤, 그러니까 양명고 옆 지금의 대우아파트에서 2번째 새로운 일을 했다.  

순전히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양수,원배가 있어서 무조건 안양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이 녀석들 학교 그만두고 왔다는데가 고향선배가 일하는 이 건설현장이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파트 벽과 자재들, 높은 층에서 바라본 안양시내의 전경들, 그리고 추웠던 날에 불깡통으로 언손을 녹이면서 일했던 날들... 

 

노가다도 많은 분야가 있는데 내가 했던 분야는 전기분야였다.

 아파트의 전기분야와 시멘트를 섞어 굳게 하는 일, 옹벽을 세워서 그 안에 철근을 넣었던 일이 주류다. 아침 6시면 일어났다. 아파트 현장 사무실 같은 곳에 숙소를 정해서 5명정도 잤는데 일어나면 세수보다 더 먼저 이불개고 밥먹는게 일이었다

. 함바집에서 먹었던 밥은 참 맛있었다. 양도 많고 맛도 있고 어떤 날은 아침부터 막걸리 한잔 먹기도 했다. 여러 아파트들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은근히 힘도 들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일 좀 할 만하면 새참에 또 일하다 점심에 또 새참에 하다보면 저녁이다. 저녁이면 고기안주에 항상 막거리를 마셨다. 소주도 마시고... 그리고 언 물로 세수하고 찟고 숙소로 들어온다.  그해는 참 눈이 많이 왔다. 그리고 젊은 날이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없었다. 인천에서처럼 용접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그 일이 재밌었다.

 

쉬는 날이 따로 없었기에 기분이 동하면 저녁에 안양역 근처로 술을 마시러 자주 갔다. 지금처럼 멋지게 선 안양역이 아니었기에 그 당시는 초라한 건물에 그 주위에 술집이 많았다. 안양역 바로 밑 따따부따 라는 커피솝 겸 호프집이 있었다.

낮에는 커피팔고 밤에는 맥주를 파는 집이었는데 자주 그 집에 갔다. 양수라는 친구와 자주 갔는데 그 집에서 일하는 아가씨 둘과 친하게 됬다. 이름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혜숙이라는 아가씨와 은미라는 아가씨였다.나이가 우리보다 많은 23살이었는데 우리도 나이 구라를 좀 쳤다. 어두운 조명의 커피솝겸 맥주집,그리고 술 마시고 취하는 젊은이들.. 정말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그렇게 몇번을 가다가 크리스마스  날 친구 양수에게 전화가 왔다.

 

 혜숙이라는 아가씨가 양명고 밑 다리에 와있다고 나오란다. 녀석 좋다고 나가더니 밤새 들어오지 않았다. 잘 됐나보다 했다. 그날 눈도 참 많이 왔는데...  아침에 부시시한 눈으로 녀석이 들어왔다. 어디서 자고 왔냐고 물었더니 그 혜숙이라는 아가씨집에서 자고 왔단다... 

날씨는 더 추워지고 힘들었지만 친구따라 같이 일하는 재미에 빠져 힘든 줄도 몰랐다. 인천에서 일할 때 30만원도 못받던 월급이 그 곳에서는 50만원이 넘었다. 하루 일당이 그 때 25000원 정도 였었지...  그러면서 혜숙이라는 아가씨와 양수랑 셋이 자주 만났다. 혜숙이라는 아가씨가 참 착햇다. 옷을 야하게 입고 화장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나름 청순한데가 있다고 내가 청바지도 입고 화장도 옅게 하고 청바지에 운동화 신으면 이쁘겠다고 했더니... 어느날 전화가 울렸다. 

 

양명고 밑 다린데 나올 수 없냐고 전화가 왔다. 친구랑 같이 아닌 나만 나오라고 했다.왜 나만 나오라고 한거지.

혼자 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 것을 친구에게 말했다.그 당시 의리라는 것을 중요시했던 때라 친구에게 말하니 열이 받은 얼굴로 같이 나가자고 했다.

 배신감이 느껴졌나보다. 같이 나가서 나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둘이 말다툼 같은 소리가 나고 친구가 고함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친구는 먼저 가버렸다. 그리고 가로등밑에 그 혜숙씨가 홀로 있었다. 모든게 내 탓인 것 처럼 느껴졌다. 그냥 얼른 가야지 하고 뛰는데 그녀가 달려왔다. 죄의식이 느껴져 더 빨리 달렸다. 그녀도 정말 열심히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 마주섰는데 그녀의 얼굴이 빨갛다. 울기도 하고 뺨을 맞았는지 볼이 빨가스름했다. 

 

"전 항상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상하게 자기를 격려해준 내가 좋았다고 말했다. 친구는 이기주의적이고 배려심이 없고 거칠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햇다. 부담줄려고 한게 아니고 힘든 일들이 있어서 대화나 하려고 나에게 전화했노라 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을 그제야 자세히 보니 얼굴에는 화장도 전혀 안하고 머리에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벙어리 장갑을 끼고 청바지를 입었으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영락없은 대학생의 표정 그대로였다.그리고 정말 귀여웠다. 귀엽고 이쁘다고 말했더니 웃음띤 얼굴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나에게 술한잔 사줄 것을 제의했다. 그런데 돈이 없었다. 돈을 번다는 놈이 세상에 돈이 없다니...

돈이 없는게 그렇게 한심스럽고 안타까운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술 마시기에는 그렇고 집에 바래다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한잔 사줄 것을 말 못했다. 알량한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친구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이 후회한다. 그때 따뜻하게 밥이라도 사 줄 것을, 술이라도 한잔 어떻게든 사줄 것을...) 그리고 걸었다. 그 때는 그 길이 어딘줄 모르겠더니 박달동이었다.

박달동 시장가기전에 그 쪽이었다.한참을 걸어가는 데 서로 말이 없었다.

 

 그녀가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들어가겠노라고 말하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왔다. 나는 너무도 미안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침을 더 가했다. 난 친구가 더 소중하다고 이런 나를 이해해달라고... 그녀가 고개를 떨구며 입으로 손을 가져가면서 뒤돌아 갔다. 아마 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돌아오는 내내 정말 후회를 했다. 어쩌면 지금도 후회를 한다. 그 때의 안타까움을...미안함을...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동안에 침울했다. 그 날이후로 그녀를 다시 한번도 만난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많이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번은 꼭 만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얼마후 양수라는 친구와 나는 그 안양을 떠나게 된다. 친구의 여러 사정으로 떠나게 됐는데 나도 친구따라 또 강남가는 심정으로 또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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