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4--아버지의 선물

 

 

나는 아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말인데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25년이라는 세월동안  <아버지와 아들>로 분명 살았지만 제대로 아는 게 없다.

대화도 그렇게 많이 나누어 본 기억도 없다.

유일하게 가장 많이 대화를 해본 게 내 나이 19살,취업나간 그해 추석 당일  오후였다.

아버지와 백화수복 대두병을 나누어 마셨다. 아버지께서 어른으로 인정 해 주신것 같다. 군대에서 형이 보내 준 담배 3보루도 피우라고 주셨다. 그때 나눈 3시간여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 전이나 이후에 다시는 그런 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어린 날 나의 기억에 아버지는 거의 술에 취한 모습이셨다.

그것도 하루내내 또는 주무시거나 술주정 하시는 모습이셨다.

(그런 아버지도 1년에 한 두번은 몇 주나 한달 정도 술을 일체 안 드셨다.지금 생각해보니 대단한 일이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는지 모르겠거니와 또 술 드시면 주무시지 않고 사람을 힘들게 하셨다.

늦은 저녁이나 새벽이면 아버지는 저 멀리에서부터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고 오셨다

형제들이 부축을 하거나 니어카에 아버지를 태워 모시고 오는 게 일이었다.

새벽 12~2시 사이에 술을 받으로 먼 동네까지 가곤 했다.

공동묘지도 지나고 물도 건너고 비를 맞고 눈을 맞고 바람을 맞고 무서움과 싸우며 술을 받아왔다.

 

어릴적 나의 꿈과 목표는 정해졌다.

좋은 아버지,좋은 남편이 되는 게 나의 평생의 꿈과 목표가 되었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가 아니고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어!"

 

아버지는 몸소 보여주셨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던 경기도의 날씨와 완전 다르게 부산은 따뜻하다.

푸근한 바람과 햇볕의 감촉이 여행의 기쁨을 배가 되게 한다.

그럼 우리 두 상남자가 왔는데....

 

 

 

 

 

 

 

 

 

 

 

 

 

 

 

 

 

 

 

 

 

 

 

 

2005APEC정상들이 다 모였다고 한다.

그들이 먹었던 음식과 반찬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마천루의 높은 빌딩들,

그보다 더 멋진 나의 아들과 내가 있다!

거대한 꿈과 부자 간의 사랑의 힘을 모아 사진을 담고 추억을 저장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들은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얼마나 그 추억과 시간이 행복했는지,

또 얼마나 아버지가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며 멋지게 살고 싶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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