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하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요,
다산 정약용 선생하면 다산 초당이다.
18년의 유배지에서 인생공부로 자신을 극복한 저술가이자,사상가이자,철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선생을 다시 찾았다.
2년만이다.
처음 이곳에 방문한 이후에 웬지 이곳에 다시 오고 싶었다.
어떤 기를 받는 느낌이다.
삶에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지혜를 얻은 느낌이다.
치유와 채움을 얻는 느낌이다.



다시 만덕산 다산초당을 올랐다.
처음 올랐을 때에도 비가 왔는데 이번에도 비가 왔다.
다산초당을 오르는 길은 운치가 있다.
계단을 딛고 한 발 한 발 걷는 기쁨이 있다.
애인을 만나러 가듯이 흥분된 발걸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뿌리의 길이 걸려있다.
수작임에 틀림없다.

다시 찾은 다산초당은 수줍은 여인네처럼 다소곳이 그 자리에 있었다.
사상가이자 철학자의 내공을 쌓게 만든 수련의 장.
지금에야 박물관이니 이 모습이지만 그 당시 얼마나 초라하고 작았을까?
사람의 인내와 그 모진세월을 저술로 승화시킨 그 저력을 배우고 싶다,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힘드셨을까..
과연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저절로 겸허해진다...



다산 정약용 선생.
부드러운 선비의 모습이 그려졌다.



모든 일에 큰 깨달음을 순식간에 얻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분의 사상과 삶의 내공을 어찌 한 순간에 얻으랴.
조금이나마 그 철학의 공유를 느껴보려는 소박한 마음에 촉촉한 비가 답례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과 다산 선생이 이 편액에 글을 썼다고 한다.
다산 초당.
그렇다. 여기는 지금 다산 초당이다.



천일각에서 바라 본 강진만의 바다는 그윽하다.
오래전부터 그 추임새를 간직한 곳에서 어떤 간절한 내음이 내 눈에 비친다.
왜 그토록 이곳에 오고 싶었을까?
그 많고 많은 여행지 중에 먼 길을 달려오는 이유는 갈증이리라...
삶의 무수한 것들에 둘러쌓여 산다고 하지만 모래를 가득 쥔 텅빈 마음이었으리..
그 안에 가슴 벅찬 새로운 무엇을 채우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채우고 싶고 무엇을 채우려 하는가?
다산 선생은 알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