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기 전, 너무 사랑했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같이 한 지붕에 한 이불속에서 살게 되었다.

21살의 보금자리다.

아내와 3개월을 산본 시장 근처에서 월세로 살았다.
(동거라고 표현해야 하나? 나는 사랑의 쉼터에서 쉬었다로 표현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아름다웠고 아쉬웠던 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름다웠다는 것은 우리의 순수한 영혼을 같이 나누었다는 것이 첫째다.
어린 나이지만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21살의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름답게 사랑한다.
월세 100만원에 8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연탄불을 땠는데 새벽이면 연탄가는 게 여간 곤혹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소품들.
아내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성격이 깔끔하다.
정리정돈,소품 하나 하나 모든 게 김꼼꼼이다.
아내를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자 행운이다.

 

 



 

군대를 간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리가 한 일은 참 많다.
친구와 동생을 불러다가 언약식을 했다.
앞에 놓인 꽃이 그 때 선물받은 꽃이다.
하루 하루 아쉬움이었지만 기나긴 군생활을 이기게 해 주었던 것은 이 때의 힘과 용기였을 것이다. 


그 당시 나와 아내는 직장을 다녔지만 경제 관념은 별로 없었다.
아~~ 그 때, 언젠가 11월의 1주일을 라면만 먹고 살았던 적이 있다.
내가 월급이 나오지 않아 몇장의 연탄도 없어 냉방에서 자기도 하고 쌀이 떨어져 라면으로 저녁을 근 1주일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런 날도 있었구나...
세상에 어떻게 라면만 1주일에 연탄도 없는 냉방에서 잠을 잤지?
그리고 몇 천원 빌려서 연탄을 날랐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그런 추억의 날들이 지금의 나와 아내의 행복을 지켜준다...

 

 





내가 그 당시 몸무게가 60kg도 나가지 않았다.
70kg되어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얼굴이 헬숙하게 뼈만 남을 정도로 말랐었다.

 
아~~~ 이런 사진이 행복이다.
이런 몇장의 사진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추억을 회상할 수 있을까?
국보급 귀한 사진이다.
아내와의 소중한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아내는 내 곁에 웃으며 지금 있다.
이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멋지게 세상에 살고 싶다.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피와 땀과 눈물과 소중한 시간으로 아내에게 선물하고 싶다...

1992년 10월에서 12월중순까지 그 행복했던 그 시절을 오늘 난 다시 회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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