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내 인생 최고의 친구를 만나다. ]

 

 

내 고향은 전북 진안이다.

흔히 무진장 골짜기라고 한다.
지금도 고향에 가끔 가면 30년전의 그 모습 그대로 별로 변한게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시골깡촌 촌놈이라고 소개를 가끔한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제 나이 7살. 1978년이다.
아버지께서 어떤 결정을 하셨는지 마을하고 한 시간 멀리 떨어진 곳에 외딴 집을 지으셨다.
(왜 그렇게 지으셨는지 돌아가신 아버지께 지금도 묻고 싶다.)
요즘 말로 하면 전원주택이다.
이웃이라고는 한 채도 없는 말 그대로 외딴집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본적이 있는 그런 외딴집이다..

집 앞에는 강이라 하기에는 크고 냇가로 하기에는 작은, 그런 강물이 흐르고
앞에는 200미터가 넘는 작은 산이 있었다.
바위도 많고 여러 물고기들과 동물들의 노래소리가 나는 곳이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 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지으셨다.
한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희 5형제들이 사는 집
두번째는 오리와 닭,소,염소 등 가축들이 사는 곳
세번째는 여러 생리현상과 농사 지을 때 쓰는 연장 넣어 두는 곳.
그 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고 지대가 확 트여 넓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그 외딴집의 풍광이 눈에 선하다.

그 넓은 곳에 논과 밭, 자연이 숨쉬고 친구들의 집은 멀어 보이지도 않는 멀리 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요? 좋겠다고요.
어머~  낭만있겠다. 전원생활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노래는 분명히 맞는데 3주만 살아보시면 그 말이 쏘옥 들어간다...

그 당시 현실이 다 그렇듯 시골생활 참으로 가난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고,먹은 힘으로 또 일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는 표현이 참 맞을 것이다.
(쾌 동네에서 부자라고 소문났다는데 아버지가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셨던지라...)
가난했는데, 그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형제들 너나 할 것없이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작은 농사일을 시작하여 소 꼴베고,모심고,돌나르고.거름 져나르고

가을에는 낫으로 벼 베고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고 밤에는 소죽을 끓이곤 했다.
자갈밭을 옥토밭으로 개간하고 논밭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날에 한번 놀아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일을 많이 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이라고 안 믿는 분도 있다.
하지만 30대 후반이나 40대 가난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은 거의 일상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다.참으로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지금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가난했던 그 삶의 견뎌낸 생활들이 제 인생의 거름이었나 봅다.

웬만한 고난이나 실패는 두렵지 않다.)

그래도 외딴집에 살면서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여름이면 고기도 많이 잡았습니다.
천렵이라고 앞 냇가에서 웃통을 벗고 멱 감으며 물고기를 잡아 어른들은 매운탕에 소주 한잔 걸치시고 어린 아이는 고기만 먹고 물가에서 수영도 하고  대수리도 잡았다. 고동이라고도 한다.
많이 잡아서 동네에 내다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했다.

수영이 지치면 나무 그늘에서 늘어지게 한숨도 잔다.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다.
겨울이면 "토끼가 너희들을 잡겠다.

" 어머니께서 말씀하셔도 동생과 둘이서 온 산을 헤메며

토끼를 잡으려 돌아다녀 옷을 흠뻑 젖는 일도 많았다.
이사 올 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 덧 초등학교 6학년때에는 엄청 크고 좋은 맛으로 자랐다.맛있고 크다는 소문 때문에 도시에서 찾아와서 많이 사가곤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아이 머리 크기 만할 정도로 컸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몇년전 추운 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 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팠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키웠다.여러 거름 배설물들을 주어서 키워온 정성의 결정체이다.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 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고구마, 콩과 곡식들을 캐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 왔다.
부자라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때였지만 겨울내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고 뿌뜻한 행복으로 다가 오는 시간이었다.

길고 추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낮에는 땔감하느랴 몇시간 보내고 저녁에는 짐승들 밥주고 소죽 끓인다.
그 군불에 고구마, 가래 떡 구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밥 먹고 난후 그 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냈을까?
어린  그 시절부터 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인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던 시절, 호롱불 밑에서 그 불빛에서 읽었던 그 독서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저절로 생각이 납니다.

아스라히 잊혀진 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는 그 때 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 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서 지루해지자 해가 뜨는 낮에 눈속을 뚫고 먼 마을로 걸어갔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가서 친구들 집 집마다 다 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 즐거움은 아마 모를 것이다.
한권 한권. 가방에 넣어 메고 오는 약간은 무거운 가방의 무게. 그 무게로 느껴지는 들뜸과 희열이 나는 그 기쁨.
홀로 다시 외딴집으로 돌아오는 소년의 가슴에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책이라는 이 든든한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기에 발걸음은 더욱 재촉된다.
방학 때 이 책들이 있으니 이제 안심이구나. 하는 마음이 든 거다.
그때부터 책은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 것이다.

 

그 때, 내 평생 친구를 만났다. 


내 친구는 친구이자 스승이었고 선생님이자 조언자였고 밥이었고 반찬이었다.
무더운 날 마시던 생수였고 등산을 같이 하는 배낭이었고 나를 유혹과 절망에서 꺼내어주던 소중한 동반자였다. 친구 그 이상의 친구, 나의 사랑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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