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이리스'의 이병헌
생방송에 가까운 드라마… 견딜 수 있을지 두려워… 1년간 캐스팅 고사
모방 통해 더 나아지는 법… '미드' 따라갈 수 있다면 성공한 것 아닌가
할리우드선 걸음마 단계…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한국말 연기하는 한국인

'월드스타'란 말은 남들은 인기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쉽게 인기를 느낄 수 없는 배우를 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할리우드 영화 '지 아이 조'), 일본(한일 합작영화 '히어로'), 그리고 유럽(프랑스·미국 합작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까지 실제 활동 영역이 지리적으로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이병헌(39)은 좀 다르다. 국내 팬들에게도 손만 뻗으면 쉽게 닿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생생하게 현재적 의미를 갖는 월드스타는 그동안 흔치 않았다.

대중들이 최근 그를 더 가깝게 여기는 건, KBS 2TV 수목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데뷔 후 18년간 응축시켜온 연기의 힘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조직과 친구에게 지독한 배신을 당한 뒤, 적(북한)과 손잡고 복수에 뛰어든 야수 같은 남자 김현준이 그가 맡은 배역. 이 첩보 드라마는 지상파 방영에서 10회 만에 시청률 33.7%를 기록했다. 케이블 채널, DMB 채널, 인터넷 VOD까지 합치면 50% 이상의 실질 시청률을 기록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빠른 구성과 역동적 화면의 힘도 컸지만 이병헌의 열연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든 성공이다. 15일 오후 서울 청담동 BH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나타난 그는 목에 머플러를 감싼 채 가벼운 기침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밝힐 수 없는 해외 프로젝트 건으로 신라호텔에서 미팅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아이리스는 사실 내가 출연할 작품이 아니었다"고 하더니, "죄송하다"며 말보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까지 진출한 한류스타 이병헌. 그러나 그는“내가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배역은 결국 한국에서 한국말로 연기하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무슨 소리인가? '아이리스'는 이병헌의 출연을 전제로 한 기획 아니었나?

"글쎄, 처음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 다른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시놉시스를 보고는 '나와는 인연이 아니다'란 느낌이 들어 1년간 고사했다. 내심 '생방송에 가까운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과정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래도 꽤 사전 제작이 이뤄졌다고 들었다.

"요즘은 드디어 생방송 단계로 진입했다. 하하하. 격렬한 액션이 많아 한 장면 찍는 데 하루가 걸릴 때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가면서 드라마를 찍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좀 창조적이지 못한 방식인 듯하다."

―하지만 대중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나.

"칭찬도 있고 기대보다 부족하다는 불만도 있다. 그래도 새로운 장르를 향한 모험을 감행했는데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아이리스'는 미드(미국 드라마)를 짜깁기한 것 같다는 평가도 받는다.

"미드를 따라갈 수만 있다면 성공한 것 아닌가? 모방을 통해 좀 더 뛰어난 것을 탄생시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 처음에 우리 드라마를 '쉬리'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때 이미 난 '아이리스'는 미국 드라마 '24'나 영화 '본(Bourne) 아이덴티티' 시리즈를 꿈꾼다고 말했었다. 방영을 시작하니 누군가 이병헌의 '뵨 아이덴티티'라고 해 크게 웃은 적이 있다(이병헌의 일본 애칭 '뵨사마'와 '본 아이덴티티'를 합친 말)."

―올해 당신은 두 편의 외화를 통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배우로 거듭났다. 할리우드 첫 경험은 어땠나?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게 확연히 보이더라. 투자자들 입김이 거세다. 무섭다. 국내 촬영현장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끈끈함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당신이 '지 아이 조'에 캐스팅된 건 솔직히 일본, 한국 관객 주머니를 노린 할리우드의 계산 속 아니었나?

"그럴 거다. 계산기 두들겨서 남는 게 없으면 등 돌리는 게 그들의 방식이니까. 그쪽에서 손 내밀고, 내가 그 손을 잡은 건, 서로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지 아이 조' 일본 홍보 행사 때는 팬들의 열기가 하도 대단해, 함께 간 외국 배우들이 '너 일본에서 완전히 마이클 잭슨이네'라며 감탄했다. 다행이었다. 사실 '지 아이 조'에서 기존의 패턴과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많이 불안했다. 복면 쓰고 칼싸움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내 스타일은 아니라서."

―미국서 촬영하면서 차별을 당해봤나?

"영어에 꽤 자신이 있었는데도 슬랭(속어)을 잘 모르니까 쉽게 끼어들지 못하겠더라. 촬영 초반에는 나 때문에 분위기 썰렁해질까 봐 버스로 함께 이동할 때도 가만히 있었다. '왕따 아닌 왕따'가 됐었다. 다른 배우들 사이에서는 '쟤 왕자야?', '너무 거만한 것 같지 않아?' 같은 얘기가 돌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졌다. 종종 연락하고 만난다. 시에나 밀러는 LA에 갔을 때 연락을 하니 수많은 파파라치들이 달라붙어도 편하게 나오더라."

―할리우드에서 이병헌은 어디쯤 있나?

"걸음마 단계도 못 된다. 내가 언제 할리우드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나? 난 내 '베이스'를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아무리 고급 영어를 마스터한다고 해도 미국인의 습성과 문화를 그 나라 사람들만큼 표현해낼 수 있겠나? 내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배역은, 한국에서 한국말로 연기하는 한국인이다."

1991년 KBS 공채 탤런트 14기로 데뷔한 이병헌은 "신인 시절 PD들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 친구의 부추김으로 탤런트 시험에 도전했다가 덜컥 합격했다"는 그는 "'이 길이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이 늘 가슴 한구석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PD들의 차 문을 열어주는 배우가 아니라, PD들이 차 문을 열어주는 배우가 돼야겠다"고. "방송사 PD들이 엄청 권위적이었던 시절이었는데, 욕먹다가 '깡다구'가 생긴 셈"이라며 웃었다.

―화면에서 보면 타고난 배우처럼 느껴지는데?

"친한 사람 두셋 있을 땐 리더 노릇을 하지만 그 이상 사람이 많아지면 얼어붙는 그런 스타일 있지 않나? 내가 그렇다. '난 사이즈가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고, 배우는 꿈도 꾸지 않았다. 배우가 되고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일이 많지는 않더라."

―배우를 안 했으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글쎄? 영화를 좋아했으니까, 배우 말고 영화 쪽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수를 하겠다 했을 때,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가 진지하게 '포크레인을 사줄 테니까 중장비 면허를 따보라'고 하셨다. 그랬으면 지금쯤 날리는 중장비 기사가 됐을 수도 있다."

―'욘사마' 배용준씨 못지않게 일본에서 당신의 인기도 대단하다. 누구의 인기가 더 높을까?

"(잠시 침묵) 제가 듣기로는 두 사람 색깔이 너무 달라서 비교하기가 어렵다고들 하더라."

―배용준씨처럼 직접 사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하하, 그런 쪽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난 지금 하고 있는 일 한 가지에만 완벽하게 몰입해야 그나마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아이리스' 찍으면서도, '지 아이 조', '놈놈놈' 홍보 때문에 일본 행사를 다녀오고 나면 대본이 머리에 안 들어와 아주 고생했다."

―사실, 장동건이나 정우성, 배용준 같은 조각미남은 아닌 것 같다.

"젊었을 땐, 내가 나온 드라마를 보면서 '내가 봐도 멋있네' 한 적이 꽤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못 해봤다. 잘 생겼다는 칭찬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다. 요즘은 '배우같이 생겼다'는 말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게 나의 힘 아니었을까?"

―그래도 나이에 비해서는 꽤 젊어 보이는 얼굴이다.

"어릴 때 노숙해 보이는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별로 변함이 없다. 내가 그런 과(科)가 아닌가 싶다. 중학생 시절 사진 보면 그때 이미 어른 얼굴이었다. 사실 배우로서 존재감을 위해서는 무작정 어려보이는 게 좋지는 않다. 역시 내 나이에 맞는 얼굴이 가장 좋다. 그런데 종종 중·고교 동창들을 만나 술을 마시다 보면 '요즘 확실히 내가 어려보이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나이도 내년이면 마흔이다. 결혼할 생각은 없나?

"빨리하고 싶다. 하지만 결혼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해서 되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해서 느긋했었는데 최근에는 너무 일만 해서 그런지 정말 기회가 안 생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제 어느 정도 노력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럼 2004년 송혜교씨와 헤어진 이후, 단 한 번도 이성을 교제하지 않았단 말인가?

"한 명 있었다.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원생. 또 한 명은 글쎄 딱히 사귀었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배우로서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지금 이 시간이 오래갔으면 한다. 소박하게 들리나? 아니다. 선택을 받는 게 아니라 선택을 하는 배우로 살아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언젠가 나는 다시 선택을 기다리는 배우로 돌아가겠지."

☞ 이병헌은…

2009년을 기점으로 한국보다 외국 영화에 출연하는 게 더 익숙해진 배우. 그러나 현재 드라마 ‘아이리스’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나는 변함 없는 한국의 스타’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91년 KBS 공채 탤런트 14기로 데뷔했으나 신인 시절에는 고난도 많았다. 한 PD는 이병헌에게 “넌 이게 데뷔작이자 은퇴작이다. 이 드라마 끝나면 방송사 근처에 얼씬 거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캠퍼스 드라마 ‘내일은 사랑’(93년)의 신범수 역을 통해 청춘 스타로 뜬 그는 ‘폴리스’(94년), ‘사랑의 향기’(94년), ‘아스팔트 사나이’(95년) 등 남성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역을 통해 주연급으로 성장했다.

영화배우로 주목 받는 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런어웨이’(95년), ‘그들만의 세상’(96년), ‘지상만가’(97년)의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이후 그는 ‘연기파’로 통하기 시작했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영화판에서도 사랑받는 이름이 됐다. 이 영화에서 이병헌을 버렸던 폭력 조직의 보스 김영철은 ‘아이리스’에서는 첩보기관 NSS의 부국장으로 변신해 똑같은 ‘만행’을 저지른다. 이병헌은 “제가 김영철 선배님을 ‘아이리스’에 추천했다”며 “비슷한 설정을 같은 사람과 다시 연기하니까 배우로서 몰입도가 더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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