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여름 방학 시작하기 전 인천으로 취업을 나갔다. 당시는 얼른 돈을 벌고 싶었고 졸업하는 게 꿈이었다. 새로운 곳에 동경이 많았었다.

익산에서 기차를 타 서울역에 내려서 인천행 전철로 옮겨타 동인천역에 내렸다. 그때가 1990년 7월이었다. 마중나온 사람하나 없는 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좌동 17블록이라고 기사에게 말하고 20여분 쯤 후 동부제강 앞에서 내렸다.  

회사에 도착한 첫느낌. 이거 완전 노가다 현장이구나. 지져대고 선반 깍고 크레인으로 옮기고 무슨 기계만드는 회사란다.사람들 쾌 많다. 똑같은 작업복에 50명은 되어보이는 회사였다. 기숙사라고 식당옆에 방한칸 자리에 침대가 8개 있다. 막막했다. 여기서 의무적으로 5개월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그 날 밤 우리 학교애들. 인천에서 취업나온 애들. 삼척에서 취업나온 애들 8명이서 소주한잔,맥주한잔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날 송정민이라는 친구와 같이 제관반라는 곳에 배치를 받게 되었다. 제관반은 기계도면이 나오면 절단하고 용접하여 모형을 만드는 곳이다. 가장 힘들고 가장 지저분하고 가장 억센 곳이다. 여기 저기서 일하는 게 완전 철강회사, 포스코 같은 곳에서 막일하는 사람들 같다. 우리가 가장 나이가 어렸다. 관식이형이라고 그 형이 아마 28살인가 먹은 것 같다... 나름대로 거의 30대, 40대도 많았다. 우리가 그래도 막내라고 귀여움도 많이 받았지만 일은 빡세게 했다. 무슨 잔업은 그리 많은지 1주일에 3번이상은 항상 잔업이었다. 덥지. 힘들지, 학교생각나지, 외롭지.. 끝나면 힘든 와중에도 술도 자주 먹었다. 동인천 역의 자유공원이라는 곳에도 자주 가고 월미도에도 갔었다.월미도에서 아가씨들도 자주 꼬셨는데 기억에 남는 아가씨도 있다.

그 아가씨들이 23살이라고 했다. 우리는 군제대하고 24살이라고 했다. 뻥좀 쳤지. 그래 이름이 기억이 난다. 동림이하고 은경이라고 했다. 미인형은 아니었는데 싹싹한 마음씨는 있었다. 월미도에서 만나서 송림로타리에서 맥주을 마셨었지. 만난 첫날 그 자취방에 갔던 기억이 난다. 친구둘이서 가까운 곳에 자취를 했는데 잘 못하면 정말 뭤될뻔 한 만남이었다.  

 첫월급을 탔는데 아마 225.000이었을 게다. 본봉이 175000이었고 그나마 5만원은 잔업수당이었지.1990년에 20만원때 월급이라... 정말 20년전 이야기를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 

 7개월을 있었는데 정말 지금생각해도 힘들고 고단한 날들이었다. 항상 땀에 일에 야근에... 그 고단한 날들...그해9월달에는 손이 쇠에 짓이겨져 손가락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손가락이 덜렁덜렁 해질 정도로 다쳐 기브스하고 한달간 쉬었다. 돈도 없고 집에서 걱정하실가봐 기숙사에서 한달 있었던 것 생각하면..  

1990년 12월 그 곳을 떠났다. 이곳이 나의 첫번째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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