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출신으로 대학을 중퇴했다. 스무 살, 집 창고에 ‘애플’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회사를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억만장자가 됐다. 서른 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마흔둘, 다시 CEO로 복귀해 아이팟, 아이폰을 연달아 내놓으며 애플을 세계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창조와 혁신의 대명사,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이야기다.

 
 






지난 1월14일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건강 문제로 6개월 동안 병가를 냈다는 뉴스가 발표되자 애플 주가는 8% 이상 추락했다. 이후 ‘애플이 잡스의 건강상태에 대해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주들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등의 소식이 잇따라 보도됐다. 잡스는 2004년 7월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한동안 건강해 보이던 그가 지난해 초췌한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나자 암 재발설을 비롯한 각종 루머가 난무했다.
‘애플’은 미국의 자존심이다.  

지난해 4/4분기에 매출이 101억달러, 순익이 16억달러(약 2조원)에 달했다. 이 기간 250만대의 매킨토시와 2,270만대의 아이팟, 430만대의 아이폰을 팔았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로 애플을 선정했다.  


최우량 기업 애플 주가가 ‘CEO의 병가’라는 이유로 폭락했던 이유는 뭘까? 잡스가 ‘단순한 한 사람의 CEO’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기준으로 애플의 브랜드 가치는 110억달러에 달하는데(‘비즈니스위크’ 평가), 이 브랜드 가치의 절반 이상이 스티브 잡스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누구나 안다. 이 남자가 놀라운 창조성과 혁신의 주인공이며, 타협을 모르는 완벽주의자,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인 동시에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를 동시에 평정했다는 점을. 스무 살에 애플을 창업해서 25세에 2억5000만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했으며 스물여섯 살에 ‘타임’ 지 표지모델로 등장했고, 서른 살에 애플에서 쫓겨났다. 마흔 살에 세계 최초의 100%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제작했고 마흔둘에 애플의 임시 CEO로 복귀해 회사 주가를 스무 배 이상 올려놓았다.  


스티브 잡스라는 ‘신화’  


애플은 스티브 잡스 주도로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튠 등 시대를 선도하는 컴퓨터와 통신기기, 디지털 플레이어, 온라인 음악스토어를 탄생시켰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에 이어 ‘벅스’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의 애니메이션을 히트시키며 디즈니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부상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할리우드에 이어 음악 산업까지 리드하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는 또 냉혹하고 인정사정없는 협상의 달인이다. 애플사 직원들이 행여 그와 마주칠까봐 그와 겹치는 시간대에 사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그는 독재자형 보스이기도 하다. ‘유능하고도 무서운 폭군’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스티브 잡스의 전부일까? 물론 잡스는 천재적인 혜안과 통찰력을 가졌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인생에서 여러 번의 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다른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그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시켰다.  

아마도 이것이 스티브 잡스의 ‘가장 남다른 점’일 것이다.
잡스는 언론과의 접촉을 꺼린다. ‘포천’ 등 오래전부터 그와 ‘특별한 관계’를 구축해온 몇몇 언론사를 빼놓고는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이 때문에 애플 직원들은 기자들과 만날 때 대체로 익명을 요구한다. 심지어 잡스에 대해 찬사를 보낼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은둔자 잡스’가 자신의 지난날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2005년 8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장에서다. 졸업식 연사로 나선 잡스는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오늘이 내가 대학 졸업식장에 가장 가까이 온 날이다”라고 말문을 열면서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세 개의 이야기’로 요약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이 블루칼라 가정의 입양아로 자라다가 대학을 중퇴한 사연이다. 두 번째는 애플을 창업해 승승장구하다 서른 살에 애플에서 축출된 사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플에 복귀해 보란 듯이 성공하지만 췌장암 선고를 받고 회복되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법으로 이 세 가지 위기를 벗어났을까?
“생모는 미혼의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나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 생모는 내가 꼭 대졸 학력 부모에게 입양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래서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막 태어나기 직전, 변호사 부부는 마음을 바꾸어 여자아기를 원한다고 말했다.”(2005.8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중)  



스티브 잡스
●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
● 1972년 리드 칼리지 입학, 입학 후 한 학기 만에 중퇴
●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컴퓨터회사 ‘애플’ 설립
● 1980년 애플, 미국 증권거래소 상장
● 1985년 애플 이사회 스티브 잡스 CEO직에서 축출. ‘넥스트’ 설립
● 1986년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그래픽 파트 인수해 ‘픽사’로 개명
● 1991년 스탠퍼드 대학 MBA 과정에 재학 중이던 로렌 파월과 결혼
● 1995년 ‘토이스토리’ 개봉, 1995년 최다 흥행수익 영화로 기록됨
● 1997년 임시 CEO 자격으로 애플 복귀
● 1998년 애플, ‘아이맥’ 출시
● 2001년 애플 정식 CEO로 임명됨
● 2004년 스탠퍼드 대학 부속병원에서 췌장암 수술 받음
● 2007년 애플, ‘아이폰’ 개발로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