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말년
2000년 대통령선거 기간 부시와 체니 후보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클린턴은 공화당이 집권하면 8년간 자신과 민주당이 추진해온 정책들이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혔다. 특히 경제, 환경, 국제 문제에 대한 부시 당선자의 보수적인 관점은 클린턴과 너무도 달랐다. 클린턴의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부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큰 폭의 세금감면을 실시했고 세계 곳곳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클린턴이 5590억달러까지 끌어올려놓았던 재정흑자는 8년 만에 1조달러가 넘는 재정적자로 급선회했다. 또 부시 행정부의 무모한 패권주의로 인해 미국과 전세계 국가들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클린턴의 예상대로 모든 것은 원점으로, 아니 원점보다 더 나쁜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클린턴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클린턴의 업적이 모두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의료보험 개혁 프로그램은 16년 전 클린턴이 추진하다 좌절되었던 의료보험 개혁안과 상당부분 비슷하다. 또 국무장관으로 입각한 힐러리를 비롯해 과거 클린턴의 행정부에서 일했던 각료들 중 상당수가 오바마 행정부에 다시 기용되었다. 마이너리티를 배려하고 갈등과 대결보다는 대화와 통합을 중시하는 오바마의 국정철학은 분명 클린턴과 닮은꼴이다. 클린턴은 강대국 미국 호(號)를 8년간 성공적으로 조종한 훌륭하고도 명민한 정치가였다.  


클린턴은 퇴임 후 아칸소 주 리틀록에 ‘클린턴 도서관’을 세웠고 에이즈 퇴치, 지구온난화 방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윌리엄 J 클린턴 재단의 대표로도 활약하고 있다. 폴라 존스와의 소송비용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빚도 강연과 저술 수입으로 다 갚았다는 후문이다.  


8월5일, 귀환하는 여기자들을 맞은 버뱅크 공항의 환영 인파 중에는 ‘커런트 TV’의 설립자이자 클린턴의 러닝메이트였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있었다. 8년간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이었던 ‘왕년의 사나이들’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뜨겁게 포옹했다.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들은 여전히 멋졌다. 조금 지친 표정이었지만, 막 어려운 임무를 끝낸 클린턴은 몹시 만족스럽고 또 행복해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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