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B.C. 4세기 중국 춘추시대 말기, 전국시대 초엽 오(吳)나라의 장군이며 유명한 군사전략가이다. 그는 원래 제나라 사람으로서 동향인 오자서(伍子胥)의 추천으로 오왕(吳王) 합려(闔閭)를 섬기면서 그의 패업(覇業)에 공헌했던 장군이다.

손자는 전투현장의 일선지휘관으로서 보다 불후의 군사전략 명저,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저서외 그의 사람 됨됨이라든가 활약상을 확실히 전해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손자병법 연구자들이 소개하는 손자의 인물평은 간단하다.


군령이 곧 군의 생명임을 강조

그의 본명은 손무(孫武)로서 제(齊)나라 출신이다. 오나라는 오늘의 소주(蘇州)근처에 도읍을 정했고 제나라는 산동성 근방을 가르킨다. 그는 병법에 통달했는데 오왕 합려가 그의 저서를 통독한후 그를 불러 병법의 몇가지 실제를 물어본다음 그를 군 지휘관으로서 임명했다. 합려가 손무에게 면접삼아 군지휘요령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궁중의 미녀 180명을 차출해 이들을 2개대(隊)로 나눠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손무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를 처벌하기 위한 도끼를 들고 전원이 알아듣도록 구령을 했다. 그는 북을 치면서 전후좌우 동작을 요구하는 구령을 몇번씩 되풀이했는데도 궁녀들은 킬킬거리면서 웃기만 했다.

손무는 이런 동작에 대한 구령을 되풀이했는데도 궁녀들이 계속 말을 듣지않자 왕의 제지를 무시하고 대장 두사람을 훈련장에서 처벌하고 새로이 대장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때 손무는 "이부대의 장수는 신(臣)이며 장수가 군을 지휘할때는 임금의 명을 따르지 않는수도 있아옵니다"라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이 훈련에서 군령이 곧 군의 생명이라는 교훈을 깊이 심어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후 궁녀들은 구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기침소리 하나 없이 군사훈련을충성스럽게 해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이때 합려는 손무가 빼어난 용병술을 가졌다는 사실을 현장 확인하고 그를 휘하 장군으로 썼다. 오나라는 그후 강국인 초(楚)나라를 격파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晉)나라를 제압했는데 이는 모두 손무의 공으로 이룩된 업적이었다.


최고의 병서로 인정받는 '손자병법'

그후 오나라가 손자의 군사전략으로 강대국으로 비약하자 오왕 합려는 마침내 교만해지고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국정이 날로 문란해졌다. 손자는 이에 실망한나머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흰구름과 들의 학을 벗삼아 여생을 유유자적했다고 한다. 손자병법은 특히 대적(對敵)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중요시 하면서 여러 가지 속임수와 적 내부갈등조장, 적군 동맹국간의 이간질등을 많이 열거하고 있으나 이것은 병법일뿐 그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고고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었다.

손자병법에서 손자는 저서명인 동시 저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子)라고 하는 것은 옛날 동양에서는 남자에 대한 미칭(美稱)으로서 고인의 글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창작에 의해 일가를 이루면 그 글을 ‘자서(子書)’라고 불렀다. 예컨데 장자(莊子), 노자(老子), 순자(筍子), 한비자(韓非子)등과 같은 것이며 성인(聖人)의 저서는 경서(經書)라고 부른다.

손자는 전략전술을 담은 병서(兵書)인 동시에 국가 및 기업경영과 처세수양(處世修養)을 위한 기본 독본이기도 하다. 근자 우리나라를 비릇해서 일본, 미국, 유럽등지에서 손자병법이 정치, 경제, 외교에 있어서도 하나의 비법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손자병법을 군사전략의 성경(聖經)이라고 칭찬하고 일본인들은 세계 제1의 병서이며 동방병학(兵學)의 비조(鼻祖)로 받들고 있다. 2차대전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승리, 천하통일에 성공한 마오저둥도 정보심리전과 게릴라전을 위해 손자병법에 탐익했고 통일 베트남의 국부(國父)호치민(胡志明)과 베트남 게릴라전의 영웅 보구엔지압장군, 나폴레옹등이 모두 이 손자병법을 활용했다.

6·25때 의용군으로 참전한 중공(中共)군의 전투행태를 봐도 마오저둥을 비릇 중공군 지휘관들이 손자병법을 최대한 활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낮에는 쉬고 밤만 되면 인해전술로 북과 징, 꾕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면서 돌진하는 전투행태가 모두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술이다.

손자병법을 이용하는 북한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을지문덕, 이순신장군등이 이 병서의 전략전술을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손자병법의 전략전술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측은 북한이다. 처음에는 김일성, 그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등이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대남적화전략목표 달성을 위해 이 손자병법에 주로 의존해왔다고 할 수 있다.

손자는 적이 강하고 아군이 약할때 쉬면서 적과 담판하고 적이 약하고 아군이 강할 때 공격하며 몰아부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적이 강할때는 군사력동원보다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극대화해서 적내부에 갈등을 조장하며 분열을 일으키로 적과 적의 동맹국을 이간질해 적내부의 힘을 분산, 무력화 하도록 손자병법은 기술하고 있다.

북한측이 근자에 마침 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간, 북미간 마찰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때‘우리민족끼리 통일’구호아래 ‘민족자주’, ‘민족공조’를 날마다 내돌리며 극력 선전하는 것도 손자병법에 따른 우리 내부분열과 갈등조장용이며 한미동맹의 이간질용이다.

북한이 작년 느닷없이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를 통보하고 대규모 미녀군단을 응원단으로 파견하고 인공기가 한국텔레비전을 통해 전국방방곡곡에 방영되도록 한것도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북한을 미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남정보심리전인 것이다.

미국도 육군사관학교 교과목으로 손자병법을 활용하고 있으며 지금 이라크전쟁 준비과정에서 사담 후세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대 이라크 정보심리전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미국 정부 최고위당국의 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무장해제 요구와 이라크 주변지역에 대한 미군병력과 항공모함파견, 부시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도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파월 국무장관등의 일일발언등이 모두 후세인을 굴복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대 이라크 입체 정보심리전의 하나다. 최근 후세인의 망명설이 잇따라 흘러나오는 것도 미국이 손자의 최상책인 부전승(不戰勝)을 거두려는 전략전술에 다름 아니다.

손자병법은 전부 13편 2만5천자로 돼 있다. 중국에 여러 가지 병법저서가 있지만 첨단과학이 발달된 오늘까지 여전히 실용성있는 이론적 병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 손자병법은 전쟁계획과 전투방법을 기술한 가장 오래된 명저이기도 하다. 손자는 극히 단순명쾌한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럼에도 몇천년 전쟁사에서 교전국들은 이런 단순한 기본병법 원리조차 번번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다.

그 전략전술 이론의 두가지 교리는 어떤 침공도 격퇴할 수 있도록 적합한 방위태세를 갖출것과 적을 패망시킬수 있는 전략전술을 개발, 준비하라는 것이다. 적을 패배시키고 승리하는 방법 즉 전략전술은 쉽지않다.

손자는 적을 이기는 전략전술은 적과 실제 전투를 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손자는 무력사용은 최하책이며 무력은 오직 최후 수단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정보심리전과 간첩활용을 통해 무혈 부전승을 거두도록 충고하고 있다.

손자는 능숙한 전략가들은 적과 교전하지 않고 적의 항복을 받아내고 적국의 도시들을 포위하지 않고 점령하며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국을 전복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이 모두가 손자병법 13편 간용(間用)편에서 강조하는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뜻이다.

손자는 간첩전과 정보심리전을 위해서는 천문학적 경비가 들어도 반드시 지출해야 한다고 말할정도로 이 전법의 긴요성을 역설했다. 북한의 최근 대남행태에 비춰, 그들의 전략전술도 핵(核)협박 벼랑끝전술에다 정보심리전과 흑색선전, 간첩전을 배합, 부전승을 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손자는 무력을 사용하기전 먼저 반드시 딴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적국내에서 흑색소문을 광범하게 퍼뜨리고 뒤흔들어 혼란에 빠뜨리며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이다. 또 적국의 고위관료들을 될 수있는대로 많이 매수해서 자기편으로 포섭함으로써 평소 적내부를 손바닥 들여보듯 훤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월맹의 보구엔지압도 이런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을 구사, 최종 승리를 거두었다. 즉, 70년대초 사이공 독립궁에서 고위전략회의가 끝난직후 회의내용 전부가 곧바로 하노이 수뇌부에 전달돼 월맹군은 월남군의 뒷통수를 망치로 치듯 역공을 하곤했다. 정보심리전과 간첩전의 중요성이 여기서도 극명하게 실증되었다.

요컨데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고 승산 없는 전쟁은 절대 않는다고 했다.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지피지기(知彼知己), 즉 상대방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모공편· 謀攻篇). 손자는 전쟁을 할 때에는 " 남을 조종하되 내가 남에게 조종받으면 안된다(치인이불치여인·致人而不致於人-虛實篇)"고 했다. 즉 주도권을 잡지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상대방 병력을 분산시켜 수세에 몰아넣은 다음 실(實)한 것을 피하고 허(虛)한 것을 공격하는 전략전술을 권고했다.

또 적의 무방비한 곳을 공격하고 적이 미쳐 대처하지 못한 곳을 노리라고 했다.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것이다. 96년 98년 두차례 북한의 동해 무장 잠수함침투와 작년 서해교전등도 바로 이런류의 속임수 전술이다. 그는 궤도편(詭道篇)에서 전쟁은 속임수라고 했다. 즉 위장평화나 지키지 않을 허위협정과 합의로 상대 적군을 방심케 해놓고 기습공격, 적을 제압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속전속결로 하고 지구전은 어리석은 우책(愚策)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전략전술이 모두 손자병법의 이런 속임수와 속전속결로 짜여있다.

손자병법이 나온지 2,400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속에 담긴 국가경영 및 처세술등 기본적 도(道)와 전략전술은 핵과 미사일등 첨단무기가 최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녹슬지 않고 유효한 전략전술로 살아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무턱대고 많이 축적하고 비싼 첨단 무기만 사잰다고 적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손자병법을 배우고 익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때다. 핵심은 전체 국민들의 민감하고도 철처한 안보국방의식과 정부의 빈틈없는 경계와 방위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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