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12) - 우피 골드버그

부모·친지·동료·스승 등으로부터 격려와 용기를 받고, 힘겨운 시절을 극복. 오늘날의 부와 명성을 얻은 엔터테인먼트 장르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유명인들의 무명시절 이야기로부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비슷했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힘겨운 상황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경기 씨의 <내 운명을 바꾼 한마디>에서 발췌한 것이다

관리자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
“다른 사람의 조롱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네가 강하다면, 확신을 갖고 당당히 나서려무나.”
You’re strong enough to take other people’s ridicule, then stand by your convictions.

Destiny words : 네가 강하다면 확신을 갖고 당당히 나서려무나!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초의 흑인 사회자로 무대에 나선 그녀의 자유분방한 패션은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1994년 3월 21일 거행된 아카데미상에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1993>가 작품상에 지명되면서, 연출자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락성과 인류 역사의 최대 비극인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극의 참상을 다시 한 번 반추시켜주는 역사적 업적을 이루게 된다.

이날 행사장에서 스필버그에게 쏟아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버금가는 조명을 받은 주역은 빌리 크리스탈에 이어 사회봉을 잡은 흑인 여배우 우피 골드버그였다. 그녀는 깔끔한 정장 대신 폭이 넓은 검은색 의상에 선글라스 그리고 목에는 스카프를 맨 다소 파격적인 의상을 착용해 시선을 끌었다. 일반인들의 예상을 깬 이 같은 복장은 그녀의 성장과정을 짐작하게
해주는 징표이다.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의식하면서 옷을 입고 행동을 하는 것에 묘한 반감을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동화되기 위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버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집단 거주지로 알려진 뉴욕 주 첼시 출신인 우피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히피 풍 나팔 청바지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즐겨 치장하는 머리갈래를 좌우로 꼰 아프로 스타일을 하고 다닌 튀는 소녀였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얼굴에는 형형색색의 물감을 칠하고 다녔다. 당연히 주변에서 우피에 대해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야, 너 옷이 왜 그래? 차분하게 입을 수 없어? 너랑 다니면 나까지 손가락질을 받고 있어. 너랑 함께 안 다닐래!”
아동들만의 수수한 복장 틈바구니 속에서 찢어지고 색이 바랜 청바지, 가슴이 노출된 티셔츠, 흡사 가발을 올려놓은 듯한 수북한 아프로 헤어스타일은 친구들로부터 스스로 따돌림을 당하는 단초가 된다.

“복장을 문제 삼아 저를 멀리하는 친구들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옷을 차분히 입고 오라고 강요하는 이들에게 저는 오히려 너희들과 어울리지 못하더라도 그렇게는 못 해! 하고 강짜를 놓았죠. 이토록 주변 눈치에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이 영화배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답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독립적인 행보를 할 수 있도록 자극과 용기를 심어준 이는 다름 아닌 어머니다. 태성적으로 자신의 딸이 다른 아이들과는 별종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우피의 모친은 그녀에게 늘 격려를 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조롱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네가 강하다면 확신을 갖고 당당히 나서려무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어린 나이였지만 저는 남과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는 것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하지만 두려운 감정은 없었어요. 주제 넘는 말 같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 맞추어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동화되기보다는 자기 주관을 내세운 이탈을 시도했던 우피의 행동거지는 조화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영화계 속성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프로 영화계에 입문해서도 치렁치렁한 곱슬 장발머리에 검은 슈트를 단골로 착용했던 그의 행실은 처음에는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 뒤 우피의 트레이드마크를 관객들과 동료 여배우들이 모방하면서 유행의 흐름을 주도하는 패션 리더로 대접받는 사태가 발생한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사실 무척 힘겨운 일이죠. 하지만 이런 당당함이 영화계, 아니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자신감을 갖고 대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점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특출난 행동으로 주위의 질시와 조롱을 받았던 우피 골드버그는 타인의 시선에 길들여지길 원하는 세상의 흐름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면서 개성적인 스타로 성장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당당한 출세 뒤에는 딸의 행동을 전폭 지지하면서 격려하고 용기와 자극을 주었던 어머니의 그림자가 있다.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

화장터 공사꾼 출신. 재담 갖춘 흥행 배우.
1955년 뉴욕 태생. 브로드웨이 무명 배우 시절 생계를 위해 화장터 건설 현장에서 벽돌공으로 일한 적도 있다. 뉴욕에서 별다른 배역을 받지 못하자 영화 본고장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즉석 공연을 주로 하는 공연단에 소속돼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일하면서 기량을 축적해 나간다. 미국 교육 전문 채널 HBO로부터 여성 1인 특별쇼 ‘맘스 마블리’에 초대되면서 꾸미지 않은 자유 분망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미국 사회에서 전개되는 여러 가지 사안을 꼬집는 사회 풍자 토크쇼를 보여주어 갈채를 받아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The Color Purple, 1985>에서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의붓아버지에서 수탈당하는 고단한 자매 역을 맡아 1급 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낸다. <버글러Burglar, 1987> <텔레폰The
Telephone, 1988> <점핑 잭 플래시Jumpin' Jack Flash, 1986> 등에서 흑인 특유의 건들거리는 제스처와 재담을 드러낸다. 이어 <사랑과 영혼Ghost, 1990>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영혼을 연결시켜주는 영매 역할로 아카데미 조연 여우상을 따낸다. 천방지축 수녀 역을 맡은 <시스터 액트Sister Act, 1992> 시리즈로 가장 유명한 흑인 여배우 주가 행진을 지속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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