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있다면, 동양에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가 있다. 로마제국 이래로 서양의 전략가들이 제국경영의 내공을 쌓기 위한 필독서로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꼽았다면, 한·중·일 한자문화권에서는 '삼국지'였다. '전쟁사'가 공통점이다. 전략이란 것이 배부르고 등 따뜻할 때는 나오지 않는다. 동서를 막론하고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삼국지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적벽대전이다. 적벽대전이 얼마나 인구에 회자되었으면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라는 문학작품까지 남겼겠는가! 이 적벽부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판소리 '적벽가(赤壁歌)'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중국영화 '적벽대전 1·2'가 삼국지의 수많은 전투 가운데 조조와 주유, 제갈공명 연합군이 맞붙은 적벽대전을 소재로 삼은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적벽대전은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그리고 인사(人事)라고 하는 삼재(三才)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전투였다. '동남풍'이라고 하는 천시, 강에서 치러진 수전(水戰)이었다는 점에서 지리, 그리고 불세출의 전략가 제갈공명과 명장 주유가 연합하여 드림 팀을 이뤘다는 점에서 인사의 묘용을 보여준 사례였다.
삼국지 독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필자도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부분은 제갈공명이 불러일으켰다고 하는 동남풍 대목이다. '적벽대전 2'에서 과연 이 동남풍 대목을 어떻게 처리하였는가가 영화 관람의 포인트였다. 그러나 실망이었다.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부분이 대폭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동남풍을 불러일으키는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공명이 붉은 흙으로 3층의 칠성단을 쌓는다고 나온다. 1층에는 하늘의 28수(宿) 모양에 맞추어 깃발을 꽂는다. 2층에는 주역 64괘에 맞추어 깃발을 꽂는다. 3층에는 4명이 각기 닭 털이 달린 장대·칠성 호대(號帶)·보검·향로를 들고 있도록 하는 배치이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생략되어 있어서 유감이었다. 황당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영화감독마저 사실주의에 짓눌려서 동양의 유구한 상상력을 배척해 버린 결과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