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고참들의 시선에 반가움의 표현이나 웃음짓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얼어있는 표정,멋적어보이는 엉성한 이등병 계급장과 군복, 새까맣게 탄 피부, 평소의 쾌활한 성격과는 완전 다른 저의 행동에 그녀가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재미가 있었던지 웃음을 지었습니다.

 

" 응, 고참들이 근처에 있어서 반갑게 맞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깜짝 놀랐어. 어떻게 여기를 찾아온거야?"
저는 조용하게 물어 보았습니다.
"응...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주소하나 달랑들고 찾아왔어!" 하면서 편지 봉투를 꺼냈습니다.
[파주시 금촌읍 야동2리 서서함2호 전차중대 이병 이경상]
제가 냄새나는 그 화장실에서 썼던 그 편지 봉투 하나 들고 이 먼곳을 왔다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눈빛이 흐려지면서 말을 건넸습니다.
너무 너무 보고 싶어서 편지 주소 하나들고 무작정 서울역까지 왔다고 합니다.

대합실과 매표소에 여러번 물어서 서울역에서 문산행 비둘기호를 탔다고 합니다. 금촌역에 내린뒤 또 물어서 택시타고 여단으로 가면 된다길래 여단 위병소까지 갔다고 합니다. 여단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독립중대니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또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저를 만났다 합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소리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슬프게 눈물 방울이 맺혔습니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무슨 일이 있는 사람처럼 슬퍼보였습니다. 웬지 행동이나 표정이 무슨일이 있는 사람처럼... 그때는 그저 힘들게 찾아와 만남에 그랬겠지 하면서  아무말도 못하고 저도 눈시울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진정을 하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너무도 안스럽고 너무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비록 이등병이고 정말 제대라는 것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먼 이야기일지라도 그녀와 함께 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외출과 외박이 될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와 함께 있음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소대고참들이 몇번을 찾아 왔습니다. 애인얼굴도 볼겸 어떻게든 한시간 외출이라도 보내줘야 한다고 일직사관실에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즈음 소대 최고참이 하는 말이  

" 너 운좋았다. 오늘 일직사관이 우리 소대장인데 이제까지 이런 경우가 없었는데 소대장이 책임지고 외박증 끊어 줬다. 애인하고 시간 잘 보내고 와라."

저는 제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신고를 하고 어떻게 고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지 정신 하나도 없이 외박증을 들고 부대를 나오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입대 한지 5개월만에 처음 나온 사회. 그것도 제가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나온 외박은 제 일생에 가장 큰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금촌역에서 서울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좌석이 매진이어서 입석으로 기차와 기차사이의 공간에서 두손을 마주 잡아도 행복했습니다.
그저 같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녀도 기쁨의 얼굴이었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머뭇거렸습니다. 제가 몇번을 물어보았습니다.
" 혹시 무슨일 있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말고 이야기 해 봐." 아무리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직감이 무슨 일이 분명하다고 느끼고 계속 말하자 그녀는 절대 말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왔는데... 하며 말을 꺼냈습니다.

 
" 아빠가 몇일 전에 돌아가셨어. 힘들게 아프게 돌아가셨어. 어제 3,5제 지내고 왔어.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어서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무작정 편지 봉투에 있는 주소만 가지고 오늘 아침에 나선 거야. 미안해  이등병이고 힘들텐대... 지금이 자기도 가장 힘든 때인데... 절대 아무 말 안하고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게 아닌데.... 미안해..." 

 

저는 제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아니 거짓말이길 바랬습니다.

순간 저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워 미칠 것 같았습니다.미안한 사람은 바로 난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그렇게도 무기력한 사람인가에 화가 났습니다. 왜 사람들이 군대를 탈영하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그렇게 울어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를 모릅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위병소에서도 그렇게 슬픈 눈빛이었구나. 일병휴가때 보자던 그 약속을 뒤로하고 이렇게 먼길을 찾아왔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저는 그녀를 꼭 껴앉아 주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또 껴앉아 주었습니다. 제 자신부터 진정하고 위로와 사랑의 말들로 힘을 내주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이등병 군생활이지만 내 당신을 생각하면서 다른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군생활하마. 당신도 사회에서 굳세게 힘내서 잘 이겨내길 부탁할께...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래. 얼마나 감사한가. 이렇게 감사하게도 외박을 나와 그녀를 위로할 수 있다는 데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외박이후
이등병과 그녀는 500여통의 편지가 오고 갔습니다. 그녀와 저를 이어준 끈은 편지 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그녀라는 이름대신에 제게 아내라는 이름으로 한층 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중학생,초등학생 두 차돌같은 아들 둘을 키우며 저를 지금도 지켜주고 있습니다.( 제대하자 마자 바로 첫째를 가졌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제 아내의 소중함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세상 그 어떤 어려움과 힘겨움이 와도 아내가 있기에 힘겨움이 없습니다.
제 평생의 소원은 제 그 어려웠던 이등병의 그 면회 할 때의 마음으로 아내를 지켜주며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를 이어준 그 편지쓰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소중히 정말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소중하고 소중한 제 아내 김지영님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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