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파란색을 표현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늘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청색도 아닌것을 그냥 뭉뚱그려 ‘BLUE' 라고 말하기 일쑤다. 하지만. 한글을 그렇지 않다. 푸르뎅뎅하다. 푸르데데하다, 푸르무레하다, 푸르께하다 등등. 이 곳에 다쓰기도 버겁다. 이게 한글만의 묘미이다. 한글의 이러한 맛깔나는 묘미를 이야기와 잘 버무려 늘 착 달라붙는 작품을 탄생시키는 작가가 있다.

 
 이미 이 시대 최고의 ‘재담꾼’이라는 평을 받는 그. 바로 소설가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쓴 최고의 작가 성석제를 만났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일은 설렘반 그리고 긴장감 반이다. 전날새벽까지 그의 책을 읽느라 잠을 설쳤지만. 인터뷰 당일,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보았을 때의 그 기분이란. 마치 새해 선물이라도 받은 느낌이었다.

 

  점심을 함께 하기로 해, 주문을 하고 시작된 인터뷰. 시작되자마자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 법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그의 데뷔스토리가 정말 궁금했다. “법대를 갔는데 왜 문학을 했는가 하는 질문은 굉장히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사람중에 다양한 전공출신이 많은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웃음).” 그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군에서 제대를 한 84년에 그의 표현에 따르면 ‘시간이 많아서’ 책을 많이 보게 된 것. 시에 관심있는 친구들도 많고 선배도 많아서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빨리 읽는 편이라 그 시기에 몇백권을 읽어내려갔다고 한다.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을 접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많았던거죠.”
 



 
  그가 처음 문학이라는 것을 쓴 것은 84년도 가을. 문학에 관해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지만, 그는 시를 쓰고 대학신문사에 투고를 했다. 처음에 입선을 한 그의 작품에 딸린 심사평이 와닿는다. ‘서툴지만 진정성이 있다.’ 현재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이미 대학시절 입증이 되었나보다. “입선한 이후에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또 선후배 주변친구들이 문학에 뜻을 둔 사람이 참 많아서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녹아 들어간거죠.”
  그러고 보면 그는 무려 7년간의 직장생활경력도 가지고 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요. 나보다 괴테가 더 오래 직장생활을 했지요.” 직장생활하는 동안은 시집 한권을 냈다. 그러다가 93년에 그만두고 ‘우선 놀자.’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정리했는데 “두 번째 시집을 내려다가 그동안 정리한 메모나 적은 잡문이 많아서 1000매정도 되었아요. 할 얘기가 많았던 모양이야. 같이 대학다닐때 문학했던 친구한테 보여줬더니 우리 출판사에서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해서 낸 게 데뷔작이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제목이 어려운 가봐요. 사람들이 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가 산다라고 부르더라구요. 책을 내서 달리 적당한 이름이 없어서 소설이라고 붙여놓은 것.”
 그의 소설을 본 독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그는 소재선정에 있어 탁월하다. 수많은 단편들에 녹아있는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는 어디서 구해오는 것일까. “제가 좀 호기심이 많아요. 기억력도 나쁘고. 사람들에 관해서 많이 신기해하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까먹고 또 신기해한다. 늘 궁금해하니까. 그때마침 청탁이 들어오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거죠.”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소재들은 바로 그의 주변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있는 친구가 많다는 것이 그의 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아니면 직접 그렇게 살아보이거나 하는 친구들덕분에 다양한 소재를 다루게 된 것같다고 덧붙인다. 문학에 들어올때나 글을 쓸때도 보면 그는 주변의 인복이 있는 모양이다. 소재와 함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양한 배경. 다양한 장소가 녹아있는 그의 이야기들. 왠지 그는 여행을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행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아예 삶의 일부처럼 생각해요. 어디론가 떠나지 않을 때가 오히려 이상한거죠. 심지어 20대에는 집에서 잔 날이 별로 없을 정도니까.”
 

 “저는 일을 미루는 편이 아니라서 시간을 정해서 바로바로 쓰는 편이예요.” 소설을 쓰는 데 얼마나 걸릴까 궁금해서 묻자 그는 정한 시간내에 끝내기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한다고 설명했다. “글쓰는 분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저역시도 빠를 때는 단편 하나를 하룻밤에 쓴 적도 있어요. 보통은 단편 하나를 쓰고 고치는데 한달정도 걸리나요? 하루에 5매 정도쓰고 단편이 100매쯤되니까.” 그는 글을 우선 써두고 한동안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스스로가 내용을 신기해할때가 되면 다시 보면서 고치는 것. 이런 과정을 반복하니 수정하는 과정도 글을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간도 그만큼 소요된다고 하니 글을 쓰고 수정하는 것은 전문 작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해학이 묻어있다 못해 넘쳐나는 그의 말솜씨, 아니 글솜씨는 타고난 것일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못되서, 실망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럴 줄 몰랐다.’고들 하세요. (웃음) 저는 주로 듣는 사람이죠. 듣고도 잘 모르다가 집에가는 도중에 생각나면서 ‘아, 이런뜻이었구나.’하면서 웃는 편이에요.
 

 





  하지만 글을 그 자리에서 막바로 대응해야 하는게 아니니까, 시간이 걸리고 생각하고 그런 뜻이었구나 생각하고 문장을 만들면 되니까. 훨씬 낫죠.” 문장의 힘까지 충분히 수렴할 수 있어서 그에게는 ‘말하는 것보다는’ 좀 맞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의 짧지 않은 인터뷰동안 화기애애하고 웃음꽃이 피던 분위기를 생각해보건데 그의 말솜씨도 점점 글솜씨를 닮아가고 있었다. 진지하면서도 순간순간 그의 재치를 직접 느끼는 것은 글을 읽을 때와는 또다른 감동이다.
 “내가 어릴적 접한 소설은, 수호지나 옥루몽. 무협지. 이야기 힘이 강한 것들. 재미있는 것들을 읽었죠. 이러한 글들은 독자와 작가간의 유대가 큰 것이에요. 소설은 독자와 대화하고 ‘너도 그렇지 않느냐 나도 그렇다’ 식의 유대를 가지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소통이 되지 않는 소설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라도 재밌으면 남들도 재미있을테니까. 내 마음대로니까 내가 장악을 하고, 내가 장악하고 내가 잘 아는 소재를 다루니까 남들이 보면 내가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잘논다’ 고 하면 될 것 같아요. 혼자 고고하게 노는 게 아니라 장난치듯 같이 노는 개념으로 알아들으면 될듯.”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소설잘쓰는 법은 무엇일까. “잔소리같이 들리겠지만. 많이 나오려면 많이 읽어야해요. 좋은 글 쓰려면 좋은 글을 읽어야 되는거죠. 꼭 모두가 톨스토이가 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재미있어 하는 거면 충분한거죠. 다만, 안읽는 거는 문제죠. 고전을 하나도 안 읽고서는 쓸 수가 없어요.” 그는 책을 읽을 때는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책을 먼저 읽으라고 추천한다. 재미를 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도서관에 가서 재미있겠다고 생각되는 책만 읽어도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가 속한 그룹에서 가장 다독가가 되어야 해요. 우리 친구 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읽는다. 우리 부서에서 내가 가장 많이 읽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밑천이 딸려서 안되죠.”
 

  글을 쓸 때는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추천목록을 만들어주기보다는 직접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보라는 그의 말이 와닿는다. 무엇이든 ‘재미’를 붙여야 하는 것이 중요할 터. 최근에 부는 책바람은 추천서를 만들어 읽지 않으면 안될 것같은 의무감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는 듯. 그는 네이버의 책캠페인에 공감하면서 아직 한국만큼 순수문학이 인정받고 있는 곳이 드물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처세관련 서적이나 경제서적 아닌 순수문학은 해외에서는 대학이라는 상아탑에만 머무른 것이 이미 오래.
  우리나라에는 그래도 순수문학이 살아있는 것이 의미있다는 점을 꼽으며 앞으로의 책캠페인에도 응원을 덧붙였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극단적인 ‘분노’등의 하나의 감정을 다루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의 복합적인 감정이 아닌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인 감정. 무슨 이야기든지 재미있게 재탄생시키는 그의 ‘마이더스의 손’에서는 어떤 모양을 가지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얼마전 신문칼럼에 ‘고전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이라면 성석제의 소설을 읽는 것도 빼놓지 말 것.’이라는 문장을 보고 반가웠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적인 작가, 성석제. 그와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한 손에는 자료들을 한손에는 어김없이 책을 들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이 시대 작가의 모습이다. 앞으로 그가 우리에게 선물처럼 선사할 많은 작품들에 미리 감사하면서. 소설가 성석제와의 특별했던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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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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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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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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