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열전
한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장부로 세상에 나와 그 뜻이 크다
때가 영웅을 만들어내니 영웅 또한 때를 만들 일이다.
천하를 내려다보니 어느 날에 큰일을 이룰 것인가
동풍이 점점 차가운데 장사의 의기가 끓어오르는구나.
기개를 떨쳐 가나니 반드시 목적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쥐 도둑 이등박문이여 어찌 네 목숨에 비길까
어찌 이에 이를 줄을 누군들 알았을까
세상일이 원래 그러한 것,
동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루자.
만세 만세여 대한 독립이다
만세 만만세여 대한 동포다.”

정확히 100년 전 10월26일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기 한 달여 전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항구에서 엔치야에 머물던 친구들과 작별했다. 친구들이 언제 돌아올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안 돌아올 것이다.”
형가에 근접한 이봉창
그때만 해도 장군은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야 비로소 이토 히로부미의 방문 사실을 알았고 거사를 준비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다. 안중근 장군의 마음과 하늘의 뜻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의 거사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대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형가와 안중근은 모두 중국 땅에서 거사를 감행했다. 이후 또 다른 자객인 이봉창이 대단한 거사를 감행했다. 일본 천왕의 암살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형가와 가장 근접한 인물이다. 절대세력을 제거하려 했고 거사에 실패했다는 점에서다. 이렇듯 우리는 열전에 나와 있는 인물 유형을 통해 사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늘의 별자리와 같은 것이다.
광막한 우주에 떠 있는 별자리와 같은 인물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빛나고 있는 별인가? 혹은 어둠인가? 열전은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진나라 왕 정은 과연 형가의 예측대로 기뻐하면서 형가를 맞았다. 왕을 향해, 아니 적을 향해 나아가는 형가와 부사인 진무양, 이때 형가의 염려가 현실로 나타난다. 연나라의 장사라고는 하지만 담력이 부족한 진무양이 얼굴빛이 바뀌면서 덜덜 떨기 시작한 것이다. 거사를 감행할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첫 번째 불길한 조짐이었다. 하지만 형가는 여유롭게 그 위기를 넘기고 왕에게 지도를 들고 다가간다. 지도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환한 얼굴로 왕이 지도를 펼치자 비수가 드러났다. 그 찰나에 형가는 왼손으로는 왕의 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쥐고 왕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왕이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소매만 떨어졌다. 왕은 칼을 뽑으려 했지만 칼이 길어 뽑지 못하고 칼집만 잡았다.
왕은 도망쳤다. 형가는 뒤를 쫓았다. 어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옆에 있던 지혜로운 신하의 일갈이 왕을 살렸다. 칼을 등에 지고 뽑으십시오. 왕은 칼을 등에 지고 칼을 뽑아 내리쳐 형가의 왼쪽 다리를 베었다. 쓰러진 형가는 비수를 왕에게 던졌지만, 한참 혈기방장한 왕은 비수를 피하고 비수는 궁의 구리 기둥을 맞고 튕겨져 나왔다. 왕은 쓰러진 형가를 난자하고, 형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형가는 “당신을 사로잡아 위협을 해서 태자에게 보답하려 했다”면서 준엄하게 진나라 왕을 꾸짖었다.
거사가 실패하자 호랑이에게 상처를 입힌 격이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진나라 왕 정. 진노한 그는 군사를 동원해 연나라를 공략했고, 태자 단은 동쪽으로 달아났다. 5년 후 연나라는 망했다. 이듬해 진나라 왕 정은 천하를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라고 불렀다. 중국 고대의 신 황제, 신들의 왕인 황제가 땅 위에 나타난 것이다.
열전은 형가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자객이자 예인인 고점리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고점리는 형가와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추던 예인이었다. 뛰어난 예인이었기에 진시황은 그가 형가의 친구임을 알면서도 가까이 두었다. 단 그의 두 눈을 멀게 해 멀리서 연주만 하게 했다.
열전엔 이렇게 적혀 있다.
“진시황은 고점리의 뛰어난 축 타는 솜씨를 아까워하여 용서하는 대신 눈을 멀게 했다. 그러고 나서 고점리에게 축을 타게 했는데, 그 소리를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진나라 시황은 그를 점점 가까이하였다. 고점리는 축 속에 납덩어리를 넣어두었다. 진나라 시황 곁으로 가까이 갔을 때 축으로 내리쳤지만 시황은 맞지 않았다. 진나라 시황은 결국 고점리를 죽였다. 이 일로 해서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제후국에서 온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자객이여, 너는 누구냐”
중국의 하얼빈에서는 해마다 10월26일이 되면 총성이 울린다. 이 울림은 어디에서 오는가? 1909년에는 하얼빈의 대합실에서 울렸고, 그부터 70년 후인 1979년에는 서울의 궁정동 안가에서 울렸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자객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박정희라는 인물보다는 유신정권이라는 망령을 저격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권총 또한 그러하다.
이들이 손에 들고 뜻을 펼친 무기는 총이다. 총알은 빠르게 나아가 상대를 절명시키는 무기다. 총 이전에는 칼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총성과 비수의 음률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으로 전이된다. ‘운명교향곡’ 도입부의 강렬한 엑스터시는 바로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음악이다. 음악과 비수와 총성, 겨누는 자와 도망가는 자와 쫓아가는 자의 모든 동작이 ‘운명교향곡’에 담겨 있다.
형가를 읽으면서 베토벤을 들으면, 동서양의 두 정신이 하나의 강물로 굽이쳐 흐르고, 천둥 번개가 치고, 때론 조용히 호흡하면서 저 화엄의 바다로 나아가는 모양이 보인다. 음악이 눈에 보인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 음악에 자신의 이야기가 담기기 때문이다. 그 음악에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눈을 감아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먼 길을 달려와 숨이 차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지금도 만주벌판을 질주하는 힘찬 영웅들, 그 준마들의 말발굽소리가 메아리쳐 온다.
그리고 자객들의 칼에 쓰러지거나 모멸을 당한 인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가 자객을 바라보는 위대한 인물들의 극적인 심정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믿었던 이 세상이 나를 찌르는구나. 세상이여 너는 누구냐? 자객이여, 과연 너는 누구냐?


▼ 다음 회 예고
첫 회를 ‘자객열전’으로 선택한 것은 2009년이 안중근 의사의 거사 10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안중근 의사야말로 자객의 대표적인 유형입니다. 다음달에는 ‘사기열전’의 저자 사마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옛 책에는 저자의 자서(自敍)를 맨 뒤에 붙였습니다. ‘사기열전’에도 맨 마지막에 사마천 자신의 기록이 붙어 있습니다. 사마천에 대한 기록은 ‘한서’에도 남아 있습니다. ‘사기열전’과 ‘한서’를 전거로 글을 쓰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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