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을 베어 건네다
하지만 정국은 계속 태자 단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진나라의 장군 번오기가 연나라로 망명했다. 만약에 그를 받아준다면 진나라를 화나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태자 단은 자신의 품으로 날아온 가여운 울새와 같은 장군을 품으려 한다. 태부는 절대 받아들이면 안 된다면서 번오기를 받아들일 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기를 던져놓는 격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투항해 온 장수 번오기를 품으려 하는 맘 좋고 심약한 태자 단에게 태부는 말했다.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진다.”
그래도 단은 요지부동이었다. 현인의 눈에는 바로 앞의 불행이 확연하게 보이는 법이다. 태부는 자신의 지혜와 용기로는 감당되지 않는 일이라 전광 선생이라는 현인을 단에게 소개한다. 태자 단이 전광 선생을 만나면서 진시황 암살이라는 계획이 무르익는다.
태자는 전광 선생을 만나 연나라와 진나라가 함께 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전광 선생은 자신은 한때 하루에 천리를 달리던 준마였지만 이미 늙고 쇠약해진 노둔한 말이라면서 광야를 달릴 수 있는 준마인 형가를 추천했다.
태자 단은 전광 선생에게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간곡하게 당부했다. 전광 선생은 심약한 태자의 걱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광은 몸을 낮추고 형가를 찾아 가 간곡하게 태자 단의 준마가 되어줄 것을 당부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비밀 유지에 대한 태자의 염려를 덜어준 것이었다. 형가는 즉시 태자를 찾아가 전광 선생의 죽음을 전했다. 태자는 전광 선생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형가가 자리에 앉자 태자는 자리에서 내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그 자리에서 태자 단은 말했다. 진나라 정을 찔러 죽여 진나라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게 한 다음 다른 제후국들이 합종한다면 진나라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이 일, 즉 진나라 왕을 제거할 수 있는 영웅을 만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당신이 그 일을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이었다. 형가는 자신은 그러한 일을 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면서 몇 번 거절하다 끝내 허락했다.
형가가 진나라로 길을 떠날 때 가지고 간 것은 번오기 장군의 목과 연나라의 요지인 독항의 지도였다. 독항은 일찍이 진시황이 눈독을 들이던 땅이었다. 두 가지 덕분에 진나라 왕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태자 단은 당연히 번오기 장군의 목을 줄 수 없다고 했지만, 이 소식을 들은 번오기 장군은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형가의 뜻에 따랐다.
안중근의 ‘장부가’
형가의 거사에는 이미 두 ‘인간’의 죽음이 있었다. 전광 선생과 번오기 장군의 목숨이었다. 이 둘은 형가의 성공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태자는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서 부인의 비수를 황금 100근을 주고 구입했다. 독약이 발라진 그 칼날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비수와 두 사람의 목숨, 그리고 기름진 땅까지. 진시황에게 다가가기 위한 준비가 다 되었다고 태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형가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온다면 길을 떠날 일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장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심한 태자 단이 형가에게 큰 실수를 한다. 다른 뜻이 있어 주저하는 것이냐, 즉 겁이 나는 거냐는 식의 질문이었다. 형가는 단호하게 태자를 꾸짖었다.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비수 한 자루를 가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진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다음, 태자가 그런 말을 하니 당장 떠나겠다면서 연나라의 진무양이라는 얼치기와 함께 길을 떠난다. 형가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더불어 온 우주가 흔들렸다.
이 대목에서 나는 형가 거사의 위태로움을 보았다. 1%가 모자란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다면 진나라 왕을 벨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대국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전주곡이었는지도 모른다. 형가는 슬픈 곡조인 우성으로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노래를 부른 다음 진나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전한다.
대한제국의 안중근 장군도 이러한 길을 걸었다. 하얼빈 김성백의 집에서 머물렀던 거사 전날, 안중근은 하얼빈 역을 바라보면서 ‘장부가’를 적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