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역할이 없던 그는 전화 받는 일을 자처한다. 당시 영화사에는 내로라는 기자, 평론가, 시나리오 작가가 건 전화도 시큰둥하게 받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달랐다. 한 통을 받아도 깍듯하게 받았다.
“한마디로 애살이 많았지. 그래서 그랬는지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을 때 기자들이 호평해줬어요. 출연진 중 제일 막내인 나를 도리어 비중 있게 다뤄줬습니다. 전화 안내한 덕을 좀 봤지요.(웃음)”
신필름을 그만두는 건 모험이었다. 초짜가 과장급 월급인 5만원을 받기란 쉽지 않은 때였다. 월급을 제대로 주는 건 신필름이 유일했을 때다. 그러나 그그에게 어울릴 만한 청춘물이 없었다. 영화를 못 찍으니 갈증이 났다.
“그때 안 나왔더라면 이지고잉(easygoing)한 놈이 됐을 거예요. 다행히 나오자마자 다른 회사가 같은 금액으로 월급을 맞춰 주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 잘한다면서 곱절을 주기도 하고. 그때 연기 잘하려고 출연 예정이 잡힌 드라마하고 비슷한 ‘굿바이 어게인’을 얼마나 봤는지 몰라. 앤터니 파킨스하고 잉그리드 버그만 나오는 거였는데.”
그렇게 하나둘 청춘물을 찍자 인기가 올라갔다. 영화 ‘맨발의 청춘’이 정점이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몰렸다. 엄앵란과 약혼을 발표한 뒤에는 호텔에 머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팬레터도 많이 왔지만 관심이 없어 제대로 읽지도 않았단다. 예쁜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물론 팬레터에 답장한 적도 없다. 미국에 머물던 애인에게 안부를 전할 때만 편지를 썼다. 그래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신성일 아이’를 업고 왔다는 여인과 ‘한번 털자(한번 싸움 붙자)’고 이리에서부터 올라온 청년이다.
“여인은 엄 여사한테 된통 혼나서 갔고, 청년은 나를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곤 갔어요. (웃음) 내가 가장 감동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팬은 고은아씨예요. 나랑 영화 찍으며 그러대요. 학창시절에 책 보다 선생님들한테 많이 혼났다고. 왜냐 물으니 그 안에 제 사진을 두곤 그렇게 아껴 보고 그랬대요. 아마 그 정도가 우리 시절의 가장 애틋한 애정표현일 것 같은데….”
‘무비 스타’
영화는 신나는 놀이였다. 촬영장에 애인을 데리고 가면 더 재미있었다. 애인을 여배우의 친구라고 하곤 앉혀놓고 그랬다.
“난 영화가 좋았어요. 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말에 동의해요. 영화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재미예요. 재미있는 영화를 재미있게 찍던 시절이니 행복했지. 재미있게 찍으려면 일에 열중해야 해요. 배우는 자기자신에게 열중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스타일에 신경 써야 해요. 난 ‘맨발의청춘’ 찍을 때도 검은 점퍼 입은 트위스트 김하고 대비돼야 한다 싶어 흰색 가죽점퍼를 입었어요. 그거 찾느라 이태원시장을 얼마나 뒤졌는지 몰라. 물론 영화 개봉된 후에 그 옷이 엄청 히트 했지.”
결혼하고부터는 미군부대에서 물건 빼오는 아줌마 물건을 고르곤 했다. 이것도 모자라면 미국 쇼핑몰 책자 600쪽을 샅샅이 뒤져 주문해 우편으로 받았다. 화장도 잊지 않았다. 배우를 가리키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무비스타’다. 그는, 그러니까 무비스타라는 말에 걸맞은 스타일로 살고 싶었다.
“영화가 뜨는 건 스타 때문이잖아요. 난 엄앵란 신성일이 무비스타의 시초라고 보는데, 그래서인지 무비스타로 불리는 게 좋아요.”
영화배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관찰력으로 먹고사는 건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인기를 얻는다는 것 정도가 특이하달까. 다만 멜로영화의 정석이 권선징악이다 보니 그 역시 ‘정의롭고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몸에 뱄다. 영화에서처럼 삶에서도 사랑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인생이 채워졌다. 갑자기 그에게 배우란 무엇인지가 궁금해졌다.
“내게 배우란 하늘에서 준 기회였어요. 한국에서 가장 주인공을 많이 한 배우고, 수십만 관객도 동원하고. 그렇지만 누구나 인생에 굴곡은 있지 않겠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책임을 미룰 수도 없으니 누구를 탓해. 힘들어도 내 자리 지키는 게 최선이라 봐요.”
후배들의 존경을 받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런 후배 본 적 없다”고 답한다. 참, 솔직한 남자다. ‘무비스타’라는 존재감에 대한 애정. 그건 어쩌면 개명(改名)까지 하며 국회의원이 됐지만 2년간의 감옥 생활을 거치면서 생각이 바뀐 탓도 있을 것이다.
“난 정치가 싫어요. 72년 인생에서 4년 정치 한 사람을 정치인이라 부를 수 있나? 나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정치 물에 잠시 들어갔다 왔을 뿐이에요. 그런데 (정치)해 보고나니 예술 하길 잘했다 싶어. 예술가는 사람에게 기쁨을 줘서 그런지 많은 사랑을 받는데, 정치인들 중에는 사랑받는 사람이 별로 없잖우. 정치는 속여야 하지만 예술은 진실해야 성공하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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