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긴장의 줄
조경란은 고흐가 그린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붓 터치가 강렬하고 두껍고, 아름답고, 또 무섭다. 아름다움은 두려운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고흐 이야기도 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했다.
“내 그림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게 고통스럽다.”
그녀는 미국 여행길에 하버드대 미술관에서 사온 고흐 엽서를 집필실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 그녀는 이 고흐의 글에 공감했다. 자신 역시 그런 심경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비하하지도 않고,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이 바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쓴다.
고흐의 작품이나 조경란의 작품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그러하다. 더불어 이러한 자의식이 없다면 자신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예술가는 어느 순간에도 긴장감을 놓으면 안 된다. 예술가는 늘 그러한 팽팽한 긴장의 줄을 절벽에서 부여잡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줄을 놓아버린다면 깊은 골짜기로 굴러 떨어져 소리 없이 사라진다. 무섭고도 가여운 생명의 끈이 팽팽할수록 거기에서 울리는 소리가 깊고 아름답게 떨리면서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 파장이 독자의 가슴에 마음결로 스며들 때, 예술가는 비로소 안도하고 두 발을 쭉 편다.
카프카는 소설가란 글이 안 써지는 순간일지라도 책상을 이로 물고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홍송 책상이 더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은 조경란의 페르소나가 그 자리에 앉아 뿌리를 깊게 내릴 때다.
1990년대 나는 광화문에서 한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서소문에 직장이 있었고, 미혼이었다. 퇴근하고 나서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광화문에서 술을 먹고 밥을 먹었다. 광화문 뒷골목 감자탕집이나 허름한 선술집들은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나의 또 다른 삶의 공간이었다. 밝은 대낮에 서소문 일터에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광화문 뒷골목을 어슬렁거렸다.
돌이켜 추억하니 그것은 음예공간이기도 했다. 빛과 어둠이 서로 뒤섞여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공간, 그 음예공간에 유독 반짝이는 고양이 눈빛이 있다. 한겨울날, 뭔가에 상심해서 술에 취했다. 힘든 몸을 가누기 어려워 광화문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다 골목길의 계단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앞을 휙 지나갔다. 섬광처럼 빛나는 눈동자, 나는 그 순간 무언가를 보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고양이가 사라진 어둠 속을 응시했다. 골목길은 컴컴했다. 그 고양이는 잠시 나에게 사랑을 보여줬던 것일까.

“사랑은 음악이고 음식”
사랑이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조경란의 책 ‘혀’를 점을 보는 심경으로 펼쳐본다. 조경란씨 뭐라고 좀 말해봐. 247쪽이 펼쳐진다. 연필로 줄을 그어 놓은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랑은 음악과 같았다. 배우지 않고도 그것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반응하는, 사람은 음식과 같았다. 실제로 먹어보지 않고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고이고 식욕이 느껴지는. 사랑은 음악이고 음식이다. 환희에 찬 아우성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밀어닥쳤다 탄식하게 하고 고양되며 격렬하게 하는, 혼란에 빠질 수 있으며 갈망으로 목이 타오르게 하는, 단순하게 시작되어 더 이상 숨죽이고 있을 수 없게 하는, 온몸을 자극시키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것. 정신적인 만족감과 육체적인 만족감을 동시에 주는 것.”
이 문장을 옮겨 쓰니 드보르자크 8번 교양곡 3악장을 듣고 싶어진다. 의자에서 일어나 턴테이블로 간다. 천으로 LP판을 잘 닦아내고 날카로운 바늘을 음반 위에 올려놓았다. 음악을 들려주는 턴테이블의 바늘이 요리사의 작은 칼처럼 보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허기가 져 사과를 과도로 깎았다. 붉은 사과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 과즙이 묻어 과도를 타고 흐르다 멈춘다. 문득, 눈물이 난다. 고양이 눈빛이 반짝거린다. 밤이 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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