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구나.”
그녀가 울먹이면서 대답했다.
“그러세요. 제 인생도 실패한 것 같아요.”
조경란은 서서, 아버지는 앉아서 같이 울었다.
그녀는 검고 둥근 눈동자로 와인 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언젠가 저도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어 저렇게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지요…. 슬픔과 슬픔이 만날지라도, 만날 수가 있다면 그건 온기가 되고, 고통과 고통이 만나 에너지가 되듯이 말입니다.”
그녀의 집에 전세를 사는 여자가 있었다. 현역 판사인데, 부전공으로 명리학을 공부했다. 그녀가 어느 날 문득 우리 친구해요, 하고 말을 걸어왔고,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점을 봤다. 그녀는 조경란의 사주에 다른 사람에게는 드문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우선 고독(孤)이 2개, 문(文)이 2개, 나무가 네 그루 들어서 있다.

고행의 염소자리
그래서일까. 그녀는 나무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무가 많은 여자에게는 불을 가진 남자가 좋다는 명리학적인 인생 해석이다. 불을 많이 가진 남자가 조경란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그녀의 재능과 사랑을 활활 태웠으면 좋겠다. 그녀는 자작나무가 좋다고 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자라는 자작나무는 나이테가 촘촘해 좋은 목재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녀의 별자리는 염소자리다. 염소자리는 맨발로 돌산을 오르는 자리다. 그저 묵묵히 올라가는 고행의 자리다. 염소자리는 토성을 둘러싼 냉혹한 별자리다.
그녀는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하면 몸에 탄력이 생길 뿐 아니라, 그 몸의 기운으로 문장에 탄력이 생긴다고 했다. 소설은 육체의 힘이 필요하다. 단단하고 탄력 있는 몸에서 그런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와 같은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다. 매일 50분 정도 요가를 하고, 간간이 훌라후프를 한다.
그녀의 집필습관은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에 잠을 자는 것이다. 자정 즈음에 맥주와 비스킷으로 요기를 하고 새벽 서너 시에 훌라후프를 돌리기도 한다. 간혹 선배 소설가 신경숙이 새벽에 ‘너 지금 훌라후프 하니?’라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한다. 새벽에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럼 그녀는 ‘네,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답신한다. 그 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소녀 같다. 지독한 소설 ‘혀’를 쓴 작가에게 저런 면이 있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점심약속을 꺼린다. 전형적인 올빼미 스타일의 글쓰기다.
그녀와 와인을 마시는데, 술잔을 빙글빙글 돌려보라고 했다. 어색하게 따라 하는데, 큰 와인 잔에 와인이 흘러내린 흔적이 남았다. 조금 전 잔을 타고 올라왔던 와인이 내려가고 그 흔적이 남았다.
“이걸 와인의 눈물이라고 해요. 멋지죠. 와인의 눈물.”
그리고 몇 가지 간단하게 와인 마시는 법을 배웠다.
“와인은 둘이 마실 때 좋아요. 두 사람이 와인 잔의 둥근 면을 부딪쳐 건배를 해요. 그때 잔이 울리는 소리가 좋거든요. 잔이 부딪칠 땐 서로의 눈을 보아야 해요.”
그대로 따라 했다. 야, 이건 참 괜찮은 술이군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반짝 빛난다. 그녀는 술을 좋아한다고 했다. 주량도 상당한 모양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술은 “맥주, 와인, 폭탄주, 차가운 정종” 네 가지다.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잔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단다. 그 효과는 아마도 찻잔과 같은 모양이다. 냉수는 사발, 막걸리는 탁배기, 소주는 소주잔, 정종은 도꾸리, 와인은 풍만한 여인의 몸을 닮은 와인 잔이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커피 잔에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녀는 이제 불혹의 나이다. 40세는 모든 인간에게 각별한 나이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친구가 40세에 중요한 결정을 했다. 나 역시 안락한 공간을 떠나 방랑을 시작했다. 지난한 생이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작가로서, 여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유연해지는 나이 같기도 해요. 그리고 생에 대해서 일희일비하고 싶어요. 행복한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즐거운 일이 오면 즐기고, 바늘처럼 나를 찌르면 아프고, 행복을 즐길 줄 알아야 고통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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