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의 칼


전쟁터에서 입을 벌리고 전사한 병사의 혀는 검은색이다. 6·25전쟁 학도병 출신인 우리 아버지는 기형도의 시집 제목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셨다. ‘입속의 검은 잎’. 그것은 죽은 자의 혀다. 그러나 조경란의 혀는 ‘입속의 붉은 잎’이다. 그것은 요리가 될 수도 있는 싱싱한 생명이다. 입을 다물면 어두워 죽은 공간인 입 안에 혀가 있음으로써 이와 입천장과 목구멍이 모두 싱싱하게 살아 있을 수 있다.
혀가 없는 입속은 거세당한 사내이고, 성욕 잃은 여인이다. 그녀의 소설엔 싱싱하게 퍼덕이는 혀를 요리하는 칼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칼로 보았다. 음식과 감각과 사랑에 대한 모든 서사와 수사는 결국 절묘한 요리에 대한 묘사로 나타나지만, 그 요리를 하는 요리사의 손에 늘 들려 있는 칼, 이것은 장군의 칼보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아름답다. 다시 말해 훨씬 뛰어난 칼이다.
장군의 칼이 전쟁의 칼이고 사람 죽이는 칼이라면, 이 칼은 생명의 칼이고, 사람 살리는 칼이다. 사람의 생명은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것는 먹이 사슬에 걸려 있는 모든 생명체의 공동 운명이다. 단, 인간은 칼을 이용해서 요리한다.
이것은 짐승의 발톱이나 맹금류의 부리가 아니다. 짐승이 오로지 먹기 위해 사냥하고, 죽어가는 짐승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면 요리사의 칼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만들기 위한 도구, 즉 한 단계 위에 존재한다. 칼은 인간의 도구이면서 신의 손이다.
신에게 손이 있다면 때에 따라 느낌에 따라 변화하면서 날카롭기도 하고 무디기도 한 요리용 칼일 것이다. 전투용 칼이 살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딱딱하고 가련한 남성의 칼이라면 요리사의 칼은 때에 따라 전투용이 되기도 하는 유니크하면서도 창조적인 여성의 칼이다. 날이 잘 선 요리사의 칼은 컴컴한 우주의 한가운데를 갈라내고, 거기에 빛을 쏟아 붓는 아름다운 태양이다.

홍송 책상
이 소설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본다.
“어느 날, 원고를 쓰다 말고 우두커니 식탁에 앉아 주먹만한 파르마산 치즈덩어리를 칼을 들고 깎아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약간 길쭉하고 동글동글한, 작은 치즈 덩어리가 손바닥 안에 남았다. 그것은 사과나 달걀처럼, 누군가의 수줍은 혓바닥처럼 둥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만약 문학에도 형태라는 게 있다면 지구나 태양, 혹은 달이나 사과처럼 둥글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외부의 압력에 가장 강하며 내용물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건 역시 구(球)의 형태일 테니까. 문학 안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었다.”
작가는 결국 칼 한 자루 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다. 우두커니 칼을 들고 치즈를 깎아나가는 그녀를 상상해보라. 상상력을 발동하자면, 칼과 구의 관계는 동아시아 신화의 창조주인 반고가 들고 있는 도끼가 되기도 한다. 반고는 아득한 시간을 구 안에 갇혀 있다가 단박에 도끼를 들어 자신을 둘러싼 구를 죽 갈라버리고 나온다. 한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탄생하는 모습이나 다름없다.
여성의 성기를 태곳적 창조주가 낸 칼자국으로 볼 때부터 사람은 성숙해진다. 그곳이 성스러운 장소인 것은 만물의 탄생이 이뤄지는 반고의 구가 찢어진 자리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은 빈손이고, 동아시아의 창조신 반고는 도끼, 즉 칼을 들고 있었다. 동양의 천재 노자 역시 깊은 생각을 이 칼자국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 칼이 놓인 장소인 부엌, 주방, 키친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 작품의 해설을 꾸며주신 김화영 선생의 글을 인용한다.
“소설의 서술은 두 연인이 ‘키친’에서 시작해 레스토랑 ‘주방’을 거쳐 다시 헤어진 두 여인이 마지막으로 마주 보는 ‘키친’으로 돌아온다. 시작과 끝이 서로 만난다. 그러나 시작은 사랑이었지만 끝은 미움과 죽음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소설은 공간적으로 레스토랑 주방이라는 상대적으로 개방된 장소로부터 요리사와 미식가 두 사람만이 마주 대하고 있는 극히 사적이고 밀폐된 초점으로 환원 집중됨으로써 극적 긴장감이 상승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고 부엌에는 할머니가 있고, 우리 요리가 간간이 있다.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에 힘겨운 나에게(내가 이 요리들에 낯설고 잘 모른다는 말이다.) 소금과 같은 인물이었다. 주인공의 미각을 일깨워준 대장금 같은 할머니,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필자의 안목으로는 읽고 나서도 그 이름들을 잘 알 수 없는 서양 요리 중심의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할머니의 등장은 시큼한 묵은 김치의 웅숭깊은 맛과, 시원한 김치말이국수, 따뜻한 쌀밥 한 그릇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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