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힘
그래도 썼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작가는 글 쓰는 순간에 마치 배우처럼 그 캐릭터가 내면화해야 하는데, 그 캐릭터가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더군요.”
소설가로서 힘껏 쓰기는 했는데, 뭔가 어긋나서 글이 잘 안 되는 시기였다. 그 시기에 쓴 소설들이 바로 단편집 ‘풍선을 샀어’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들을 책으로 엮으려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자신이 온전히 보이는 소설이라고 자평을 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소설가에게 소설 이외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지난했던 시간들도 작품만 썼다면, 아니 쓰려고 했다면 소설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에 출간될 작품집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 새로운 분수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새록새록 고민한 지난 3년이 슬럼프이긴 했지만, 작가에겐 필요한 시간일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그녀는 밀란 쿤데라의 문장을 또박또박 말했다.
“소설가란 지금까지 살아온 생의 벽돌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는 자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새로운 창작집과 더불어 장편소설 ‘혀’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녀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세 가지가 고마웠다고 한다.
우선은 지독한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어 고마웠고, 두 번째는 12년 전에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쓸 수 있어 고마웠고, 세 번째는 독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다. 만약 이 소설이 독자에게 외면당했다면 기가 죽었을 텐데 독자의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이 소설을 통해 인터넷 블로그의 힘을 알았고, 신작소설 낭독회를 통해 막연하게 멀리 있던 독자의 눈빛과 음성을 들음으로써 행복했다.
“소설가가 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낭독회에서 만난 독자들과 대화하는 동안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고, 앞으로 더 좋은 작가가 돼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지요.”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은 일을 하고 싶다며 미소지었다. 이젠 소설도 잘 된다. 올여름에 단편을 쓰고 나서 장편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쓰러진 바로 그 자리에서 손을 집고 일어난다. 엉금엉금 기다가도 두 손을 짚고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이젠 실패나 평가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을 가지길 나는 바랐다.
입속의 붉은 잎
소설 ‘혀’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읽기 전에 이미 풍문으로 들려왔다. 광화문 ‘문사철’ 사무실에서 같이 지내는 깐깐한 출판평론가 이권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책을 읽고 나선 아이처럼 좋아하는 이권우. 마침 그는 조경란의 ‘혀’에 대한 신문 서평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권우의 안목을 믿는다. 그는 이 소설이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그는 서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혀’는 파국에 이르는 괴이한 사랑 이야기다. 탐닉에 가까운 미각 이야기를 날실로, 집착하는 사랑 이야기를 씨실로 삼아 소설을 직조한다. 탐닉과 집착, 그리고 파국이라…. 어쩐지 잘 차려진 이야기의 성찬 같지 않은가. 결혼식 피로연장에 차려진 뷔페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 쾌락들과 뒤섞일 수 있으며 다른 쾌락들의 부재를 달래줄 수도 있는’ 의미의 성찬 말이다.”
필자는 ‘혀’를 읽으면서 칼을 보았다. 부엌과 키친과 주방을 넘나들면서 주인공이 만들어낸 온갖 요리가 우리들의 혀 위에서 춤을 춘다. 이 책은 핥아먹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 혀가 뭔가에 베인다. 만져보니 피가 나는 것 같다. 이 소설은 조경란의 ‘칼의 노래’이기도 하다. 이토록 섬세한 날이 있던가. 그녀가 잘라낸 혀는 컴컴하고 어두운 공간인 입속에 있는 붉은 혀다. 붉은 혀는 생명을 상징한다. 반대로 검은 혀는 죽은 자의 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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