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에 필름이 몇 통인데…”
사진에 눈을 뜬 건 스타이켄의 ‘인간가족’이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진작가는 미국의 유진 스미스다. 스미스의 사진은 화조가 어둡고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의 사진은 몸을 조이는 압박감을 느끼게 해요. 생명의 몸부림인 거죠. 조화로운 분위기나 묘사의 아름다움이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기에 그의 사진에는 쓰라림과 피맺힘이 있어요. 그의 어둠에는 밝음 쪽으로 도약하려는 몸부림과 내적 진통이 있어요.”
최 선생은 책꽂이에서 스미스의 사진집을 꺼내 내 앞에 펼쳐 보인다. 스위스의 베르너 비숍도 좋아한다. 그는 ‘카메라의 평화주의자’로 불리는 사진작가로 서정적이고 평화롭고 인간적인 따뜻함을 전하는 사진들을 남겼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길을 터준 도로시어 랑어도 전범으로 삼는 작가다. 이 세 사람에게서 그는 사진을 독학으로 배웠고 자기 사진의 테마를 확립했다. 최민식은 80%쯤을 흑백사진으로 찍는다.
“흑백이 표현력이 강렬하거든요. 어두운 장면이 많은 내 주제에도 맞고. 직접 현상할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그는 한 서른해 전부터 베레모를 애용하고 있다.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다른 모자는 챙이 있어서 카메라 사용이 불편하잖아요. 첨엔 머리카락이 바람에 안 날려서 좋고 먼지를 막아줘서 좋았는데 요즘은 머리카락 빠진 것을 가려줘서 더 좋아요.”
가톨릭 성인의 삶
잡기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술도 노름도 않고 사치도 여자도 멀리했다.
“술 한잔에 5000원이면 필름이 몇 통이야? 그런 생각이 먼저 들거든. 여자하고 하루 잤다 하면 필름이 70통이잖아 싶어 발걸음이 딱 멈춰져. 옷은 노상 군복 물들인 거나 입고 다니지. 대학에 강의 나가면 정문에서 월부책장수인 줄 알고 번번이 못 들어오게 해요.”
대신 그의 유일한 쾌락은 지식놀음이다. 독서다.
그에게는 잊지 못할 은인이 둘 있다. 유학을 도와준 처남이 하나고, 다른 한 분은 경북 왜관 베네딕트 수도회의 독일인 신부 임 세바스틴이다. 쌀을 사면 필름이 떨어지고 필름이 있으면 쌀이 떨어지던 그에게 마음 놓고 사진 찍을 수 있도록 12년간이나 은밀히 생활비를 지원해준 분이다. 임 신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최민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없을 리야 없겠지만 작품의 숫자가 크게 줄었을 것은 확실하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8×10 사이즈 사진 100장씩을 들고 왜관에 내려갔다.
“동아일보사에서 펴낸 ‘휴먼’ 1집을 보고 만나자는 제안을 해왔더군요. 분도출판사가 김지하의 ‘밥’같은 판금서적들을 만들곤 했잖아요. 정의를 위해, 어둠을 몰아내기 위한 증언으로 생활비 걱정 없이 사진작업을 계속하라고 했어요. 그걸 모아 임 신부님은 ‘휴먼’ 4집에서 8집까지를 만들어주셨어요. 만날 때마다 항상 똑같은 차림으로 베레모를 쓰고 골덴(코듀로이)바지를 입고 낡은 세무(섀미)신발을 신으셨죠.
자선단체 ‘소년의 집’을 설립한 미국인 소 알로시에 신부님도 토굴 같은 작은 방에 야전침상 하나만 놓고 사시더니…(소 신부 덕분에 그는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사진을 마음껏 찍은 적이 있다). 아 사람은 이렇게 사는구나 싶었어요. 예, 나는 가톨릭의 아들이지요. 본명은 빈첸시오예요. 같은 이름의 주교님이 계셨는데 고아들을 위해 주교관을 개방하신 분이죠.”
그러고 보니 최민식은 사진을 통해 가톨릭 성인의 삶을 실천해왔는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 흠모해온 톨스토이, 밀레, 베토벤이 두루 신성으로 넘치는 예술가인 점도 예사롭지 않다.
리얼리즘 사진의 목적
오늘도 그는 카메라 두 대를 메고 사람 많은 거리를 걷는다. 그는 늙지도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35㎜ 카메라의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는 그에게 대단한 기동력을 준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무릎에 카메라를 놓고 안 보이게 얼른 찍어요. 그래놓고는 눈은 엉뚱한 데를 보는 거지. 나는 일부러 꾸미거나 연출하는 사진은 딱 싫어요. 그러자면 안 보는 척 앉아서 마냥 기다렸다 순간을 재빨리 포착해서 번개같이 셔터를 눌러야지. 찍히네 마네 실랑이가 있기 전에 이미 셔터가 눌린 거지. 리얼리즘 사진을 하자면 그런 훈련이 충분히 돼 있어야 해요.”
그는 ‘자갈치 아저씨’다. 그의 작품은 요즘도 온통 자갈치 시장의 표정과 언어들로 이뤄져 있다. 그의 사진은 본질적 요소만을 포착한다. 장식성을 모조리 뺀다. 동물적 직관으로 대상을 재빨리 발견해내고 카메라 위치를 찾아내 광선과 형태, 인물의 표정이 어울리는 최상의 순간,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해 호랑이 같은 민첩함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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