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돌며 공연할 터”
-그런 때 어떻게 하십니까. 싸워본 적이 있습니까.
“싸우기는요.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고 말죠. 나를 안다는 표현을 그렇게도 하는구나 생각하고 더 곰살맞게 굴고 말죠. 그렇게 해서 내 열렬한 팬을 하나 더 확보하는 것이지요. 순간적으로 화가 불쑥 치밀 때가 있지만 애써 참아요. ‘저런 분들 때문에 내가 컸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달랩니다.”
명사회자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코미디언 출신이다. 남에게 웃음을 선사하며 생계를 꾸리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남보다 편안하고 웃음이 많기 때문에 웃음을 더 많이 제조할 수 있었지만 그에게도 뼈까지 파고드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1987년 22세 청년으로 자란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을 때다.
“그때 내가 ‘가로수를 누비며’ 교통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가버렸어요. 그길로 ‘가로수를 누비며’를 중단했지요. 교통사고 줄이자고 그토록 호소했는데 아들이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돼버리니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는 생각 등 만감이 교차해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한동안 집안에서도 웃음을 잃었지만 아내 석옥이(70)씨와 두 딸이 먼저 슬픔을 딛고 일어서 자신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 면에서 가족이 고맙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이 따로 있습니까.
“건강을 유지한다고 헬스클럽을 다니고 골프치는 사람들 마음을 모르겠어요. 나는 지하철을 8년 동안 타고 다니는데 지하철역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운동이 되는 것이 없어요. 이 좋은 운동기구를 내팽개치고 비싼 돈 들여서 운동을 하는 세태를 이해할 수 없다니까요. 그리고 음식을 잘 먹는 거예요. 나는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면 먼저 주방에 들러요. 주방에다 대고 왁자하게 인사하면 나오는 음식이 달라져요. 비싼 음식이 아니라도 맛있는 것이 나오죠. 이게 내 건강 비법이오.”
종교는 없지만 사무실 한쪽 벽면에 ‘佛心’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 인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아시다시피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북한 전역을 돌며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젊어서 북한 전역을 돌며 공연하면서 사회 솜씨가 늘었고, 그것이 재산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 일로 먹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결 부분에 도달한 만큼 고향땅을 돌면서 인생을 마무리해야지요. 그동안 거둔 성과들을 고향에 보고하고 한없이 우리 노래를 부르면서 생을 정리하는 것이 내 마지막 소망이고 꿈입니다. 그것이 또 나를 평생 밥 벌어먹게 한 고향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송해씨는 경기 파주시에 있는 정원요양원과 결연해 그곳에 있는 치매노인들을 돕는다. 정원요양원에는 작고한 원로배우 출신 복혜숙씨의 동생 복원규씨가 있고, 만담가 출신의 김윤심씨 등이 돌봄을 받고 있다. 이들은 주변에 가족 하나 없는 무연고자들. 그래서 노년이 더욱 쓸쓸해 자신이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약관의 나이에 시작한 직업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계속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 그 자체로서 성공한 사람이다. 거기에 서민의 따뜻한 캐릭터로 만인의 가슴에 살아 있다면 ‘작은 신화’의 주인공으로 평가해도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땅딸막하고 함부로 퍼져버린 얼굴의 주인공 송해씨는 그래서 더 위대해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