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정서가 담긴 프로그램

송해씨는 대담 도중 ‘전국 노래자랑’은 노래를 부르는 프로만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의 생활과 풍속 습관이 녹아 있어 어느 프로그램보다 한국적 정서가 짙은 프로라고 역설한다.

“이 프로를 진행하면서 고치기 힘든 우리 국민의 습관 하나를 발견했어요. 바로 특정직업에 대한 경시풍조입니다. 그중에 강화도에서의 일이 기억나는군요. 한 출연자가 노래를 구수하게 잘하는데 노래가 끝나고도 무대를 내려가지 않아요.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무슨 할 말이냐니까, 자기 장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장인은 3대가 대장간에서 일을 해온 이 시대 마지막 대장장이인데 마을의 젊은 애들까지 장인을 하대한다는 겁니다.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법에서도 평등주의를 내세운 게 벌써 한 세기가 다 되는데 70대 노인을 대장장이라고 반말로 무시한다는 거예요. 장인이 만든 삽과 호미를 강화도 사람이면 안 쓴 사람이 없는데, 그런 고마움은 모르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멸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서 그 장인어르신 직업을 ‘농기구공장장’으로 이름 지어드렸어요. 아마도 제가 100번은 더 농기구공장장이라고 연호를 받아냈을 겁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후에 그 사위 분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동네 사람들의 대접이 확 달라졌다는 거예요.”









장님이 부른 ‘나그네 설움’

전북 남원에서의 일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며느리가 노래를 하자 시어머니가 춤을 추었다. 이 광경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저 죽일 년” 하면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망신시켰다고 야단났다. 또 보수적인 지방에선 방송을 보고 송해를 비난하는 항의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서 그날 일은 미담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무대에 이처럼 같이 나와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면서 고부간의 틈이 메워지는 것을 보면서 방송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관점을 바꾸면 이렇게 비난하던 것도 아름답게 비치는 것입니다. 세태 변화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너무도 고루한 인식 속에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반성을 해야 해요. 이제는 고부가 같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출연자가 너무도 많습니다. 이런 걸로 보아 고부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일화들도 많겠지만 감동적인 장면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몇 년 전 천하장사대회 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천하장사대회는 신정, 설이나 추석 명절 때 열죠. 그날은 새해 대회였는데 장님이 출연했어요. 63세 먹은 노인이었는데 모두들 정초부터 꺼림칙하다는 표정이에요. 하긴 아직도 택시기사들이 아침에 개를 안은 여자를 안태운다든지, 첫새벽부터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다든지 하는 못된 속설 때문에 여성은 이유 없이 차별받고, 이를 지키는 사람도 터무니없이 고민에 빠지는 일이 많은 세상이죠. 어쨌든 스태프들이나 대회 주최측도 꺼림칙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런 그릇된 고정관념을 깰 마음으로 억지로 출연시켰어요. 체육관 무대는 계단을 20개쯤 올라와야 하는데 딸의 부축을 받고 올라오더군요. 그날 장님 노인이 부른 노래는 ‘나그네 설움’이었어요. 그 노래가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군요. 장님 노인이 살아온 생애가 온통 이런 설움이었구나, 그 설움을 이 노래 속에 녹여놓았구나, 하는 마음에 객석도 감동했습니다. 노래를 잘해서 뿐만 아니라 잘못된 속설에 갇혀서 안그래도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는 자괴감이랄까, 안쓰러움이랄까, 그런 반성들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노인더러 노래 한 곡을 더 부르도록 했습니다. 두번째 노래가 끝나자 1만여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요. 저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요.”

그 노인은 17세 때 사고로 실명을 했는데 처음부터 보지 못한 경우보다 더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노래로 자신의 운명을 달래며 살아왔다는 얘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끌어내주면서 정월 초하룻날 장님 출연자가 출연해도 재수없는 일 하나 없다는 걸 증명했다. 그의 생각이 옳았던 것이다.

“아마 지금 그 노인은 일흔이 넘었겠지만 그후부터는 장애인이 스스럼없이 출연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휠체어를 탄 사람, 팔이 없는 장애인이 출연해 몸 성한 사람들과 당당히 겨루지요.”

-사회를 맡으면서 힘들고 어려운 때도 있을 법한데요.

“뭐니뭐니해도 장거리 차를 탈 때죠. 물론 지금 전국적으로 5시간이면 안 닿는 데가 없지만 오지에서 열 때는 10시간도 넘게 차를 타는 경우도 있지요. 방송사 버스로 가는데 강원도 속초에서 경남 남해로 떠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러다보면 몸이 지치게 마련이죠.”

-전국 어디든지 현지에 가면 그 고장 특유의 볼거리와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지요.

“물론 있지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특산품 때문에 무대에서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먹을거리를 준답시고 양쪽에서 입을 벌리고…. 어거지로 먹는 수난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여성용 스타킹을 얼굴에 뒤집어씌워서 숨도 못 쉬고 헐떡거린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 자체를 즐기는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미리 콘티를 짜 가지고 하는 ‘3분 무대’랄까, 그런 것은 아닙니까.

“절대로 미리 짜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즐겁다보니 그런 기찬 장면들이 연출되지요. 그래서 즐거운 겁니다. 출연자와 관객들이 한 덩어리가 돼야 하니까 제 자신이 먼저 그것을 즐기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무대를 신명나게 이끌어가는 비결이 따로 있습니까.

“다른 게 없어요. 우선 내가 편하게 비쳐져야죠. 사회자가 까불지 않으면 절대로 출연자가 마음 놓고 놀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녹화 전에 반드시 그 고장 시장을 찾아갑니다. 말하자면 서민들이 번잡하게 모여드는 시장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양말도 사고, 국밥도 사먹고 막걸리도 마시면서 미리 사람들에게 예고를 하지요. ‘몇시 어느 장소에서 전국 노래자랑이 있으니 그리로 오세요’하고요. 그리고 그런 곳에서 숨은 인재를 찾아내 무대에 끌어내기도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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