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 심어준 아버지
사진촬영을 위해 그의 부모가 사는 이천시 신둔면 지성리로 차를 몰았다. 이천시내를 빠져나오는데, 거리에 설봉이란 이름의 상호가 유난히 많았다.
-왜 설봉이란 간판이 많습니까.
“인근에 설봉산이 있거든요. 이천은 눈이 귀해요. 눈이 적은 고장인데 설봉산에만 눈이 쌓이니 이천 사람들은 설봉산을 신성시하죠. 그래서 설봉이란 이름의 간판이 많아요.”
비교적 큰 야산 아래 드넓은 평원이 있고, 그 한켠에 김선기씨의 부친이 운영하는 개농장이 있다. 울타리의 초입에 이르자 개들이 일제히 컹컹 짖어댄다.
김선기씨의 부친 김종회(62)씨 역시 상대방을 쏘아보는 듯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김종회씨는 “아이가 맞고 들어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도장에 보냈노라”고 말했다.
“나는 3대 독자요. 나 역시 맞고는 못살았어요. 나와 싸운 놈은 결국 항복을 해요. 나를 때린 놈 집 앞에 막사를 치고 사흘이고 열흘이고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가 복수를 하는 거요. 결국은 상대방 놈이 빌면서 용서를 구해요. 나는 지금도 자식놈들하고 팔씨름을 해서 진 적이 없어요. 나도 힘깨나 쓰는 사람이오. 그리고 건달기도 있었거든. 이천 건달들 중에 오랜 친구들도 꽤 있어요. 나는 정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놈들하고는 언제든지 일합을 해왔지. 그런 피가 내 아들한테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김씨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대견스럽다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3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개농장을 하고 있는데, 한 달에 서너 마리 정도만 팔리는 등 수입이 신통치 않아 자식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이를 스파르타식으로 길렀습니까.
“아이가 맞고 들어오면 혼을 내줬지요. 맞고 올 거면 아예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요. 어떻게든 이기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하긴 부모는 객지로 나돌고, 나이 든 할머니와 위로 나약한 두 누나만이 집에 있으니 나날이 외롭고 심성도 약해졌을 수 있다. 김선기씨는 스스로 강인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객지로만 나돌던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은 없습니까.
“아버지는 항상 저를 위해 희생해주셨는데 왜 원망을 합니까. 또 아버지는 제게 도전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여건이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도 아버지를 존경하기보다는 비난하고 원망하곤 하는데, 이례적이군요.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겁니다. 잘났건 못났건 제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20년 동안 개장사를 하셨어도 제게는 훌륭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대단히 존경하는군요.
“물론이죠. 인생의 스승으로 이원길 선생님도 존경합니다. 사고를 당한 후 좌절과 낙망 속에서 사는 저를 일으켜 세워주신 분이에요. 불구의 몸도 활용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죠.”
종합스포츠타운 세울 것
-신체가 건강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는 더 불구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정상인 중에 정신적 장애자가 너무 많습니다. 엄살도 많고요. 폐암 걸린 사람 앞에서 자기 감기가 걱정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신체 불구가 뭐 별건가요. 신체적 장애자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정신적 장애가 더 큰 문제라고 봐요.”
-장래 희망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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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
● 전남 무안 출생
●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 문화일보 문화부장, 사회2부장
● 대한매일 논설위원, 수석편집부국장
● 용인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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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스포츠타운을 세울 생각입니다. 사우나, 헬스를 겸비한 스포츠타운을 세워서 거기서 생긴 수입으로 후진을 기르고 싶어요.”
-인생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도전정신이죠. 최선을 다해 도전하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해보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는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도전정신 하나면 헤쳐나가지 못할 것이 없다는 김선기씨.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해는 그의 환히 웃는 얼굴 위로 붉은 노을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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