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씨의 부모는 경기도 이천에서 개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선기씨는 아버지 김종화씨를 쏙 빼닮았다.

이 말을 남기고 김진창씨는 체육관을 빠져나갔고 김선기씨가 다시 돌아와 말을 이었다.
“저는 1998년 가을 이원길 사범한테 이 체육관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 관원들이 조직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폭력에 연루된 적도 없고요. 저는 주먹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예의와 염치를 아는 스포츠인을 육성하고 있어요.”
-프로 데뷔는 언제 했습니까.
“1993년 10월 고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인천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판정패했죠.”
-흔히 킥복싱은 거칠고 부상이 심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잘못된 인식입니다. 부상으로 말하면 복싱이 더 하죠. 복싱경기는 얼굴만을 집중 공략하기 때문에 선수들 얼굴이 찢어지고 코가 함몰되고 망가지잖아요. 신체 중 가장 약한 곳이 면상입니다. 무에타이는 얼굴만 가격하는 게 아니라 복부 옆구리 무릎 궁둥이 가릴 것 없이 공격하죠. 체력을 많이 쓰기는 하지만 부상의 정도는 복싱보다 덜 합니다.”
‘愛人의 힘’
-정식 데뷔한 지 10년이 됐는데 30 경기밖에 안 했군요.
“무에타이는 인기 있는 스포츠가 아니어서 국내 경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못했죠. 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부상을 당해서 몇 년 동안 쉬었고요. 근래는 무에타이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으니 경기가 자주 있을 겁니다.”
-개런티는 얼마나 됩니까.
“지난 8월30일에 있었던 호마 그랑프리 무에타이 대회에서 일본의 유스키 선수에게 판정으로 졌는데, 라이벌전이었기 때문에 대전료는 똑같이 160만원을 받았습니다. 가장 많은 대전료였죠. 사실 선수생활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선수들이 직장을 갖고 있어요. 사설경호원이라든지 공장에서 일을 한다든지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뛰죠.”
그의 체급은 페더급으로 한계 체중은 57kg이다. 그러나 평소 몸무게는 65kg 정도(키는 170cm). 따라서 경기를 앞두고는 2개월 동안 8kg의 체중을 감량한다. 그는 1999년 한국챔피언에 등극했다. 불구의 몸으로 챔피언에 오른 환희를 보통 사람들은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타이틀을 상실했다. 아무래도 불구의 몸이다 보니 허점이 많아 대부분 경기에서 원 없이 두들겨맞고 링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신체의 불구로 한계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상대방의 주먹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팔이 온전하지 못하니까 상대방보다 50%밖에 주먹이 나가지 않죠. 상대방보다 왼손 주먹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니 체력은 바닥나기 일쑤고요. 체력만 뒷받침 해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는데…. 지난번 경기에서도 유스키는 사정없이 달려들더군요. 턱을 한대 맞고 그대로 다운이 됐죠. 마음속에서는 ‘KO패하고 말지’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런데 링 밖에서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는 소리가 제 귀를 흔들어대더군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일어났습니다. ‘끝까지 버텨 KO패만은 면하자’고 생각했고 역공격에 나섰습니다. 실컷 얻어맞은 뒤 판정패했죠.”
하지만 이 경기 이후 많은 팬들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쪽 팔이 없는 선수가 세계적 선수와 맞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던 것.
-다운 당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라’고 소리쳤다고 했는데, 그 중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던가요?
“물론 애인의 목소리였죠. 근래 저를 지켜주는 힘은 애인 박현희(23)입니다. 체육관에서 킥복싱을 배우다 사귀게 되었지요. 심성이 착하고 차분하며 이해심 많은 여자예요. 현희는 최근 간호학과에 입학했어요.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할 생각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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