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저는 무에타이 선수였어요. 이천실고를 다니면서 정식 데뷔전을 가졌고, 전적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팔이 하나 없으니 복싱을 할 수가 있나요?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에도 여러 번 죽어버릴까 하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를 살린 것은 베어링 공장이었다. 배상금을 받아야 하는데 법정에 가도 쉽게 해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분명 회사측의 실수로 사고를 당했는 데도 복직이 안 됐어요. 퇴직금과 보상금 산정마저 제대로 되지 않더군요. 화가 났어요.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2년여의 투쟁 끝에 2800만원의 보상금을 받아냈습니다. ‘잃어버린 팔 값’이라고 생각하니 허망했지만 그러면서 죽고 싶은 마음은 싹 가셨어요. ‘좋다,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무에타이는 어떻게 다시 시작했나요.
“고향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도장을 찾아갔습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무에타이를 익혔던 설봉체육관을 찾아간 거죠.”
그곳에는 변함 없이 그를 반기는 스승이 있었다. 현 대한무에타이평의회 회장인 이원길(46)씨. 그는 상처받고 돌아온 제자에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초등학교 때 6년간 태권도를 배웠는데 좀 단순하더라고요. 화끈하지가 못하고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무에타이 경기를 봤어요. 주먹 팔꿈치 무릎 발, 닥치는 대로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너무 남성적이고 멋졌어요. 그래서 곧바로 무에타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제 무기 하나(오른팔)를 잃어버리고 만 거죠. 하지만 이원길 사범님은 ‘무에타이는 좌절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역경을 이기는 것이 무에타이가 주는 교훈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한쪽 팔은 없었지만 남은 무기들로 다시 무에타이를 시작했죠.”
이렇게 외팔이 무에타이 선수 생활이 시작됐다. 하지만 대회에 나가면 줄창 깨졌다. 팔 하나 없는 비애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인생에서 단 한순간도 풍족했던 적이 없었다.
“장사꾼인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셨어요. 저는 할머니 손에 키워졌죠. 늘 외롭게 컸어요. 어렸을 때는 몸이 약해 동네 아이들이 저를 많이 괴롭혔죠. 맞기도 하고 공연히 욕을 먹기도 했고요. 가끔 집에 들르신 아버지가 약해빠진 제 모습을 보시더니 바로 태권도장으로 보내셨어요.”
갑자기 도장에서 카랑카랑한 여자들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았더니 20세 안팎의 여자 3명이 리듬에 맞춰 발로 샌드백을 치면서 구령을 붙이고 있었다.
-여자 관원들도 많습니까.
“그럼요. 요즘은 여자들이 더 적극적이에요. 대부분 다이어트할 생각으로 체육관을 찾는데, 땀을 한번 빼고 나면 몸이 가뿐해진다고들 말해요. 신체의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가면서 활력이 생기는 거죠.”
현재 체육관 관원은 60여명. 그중 성인 관원의 반 이상은 여성회원이다.
건달 아닌 예의 갖춘 스포츠인 육성
-경기도 이천 하면 이정재 이석재 임화수 유지광 차지철 등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많지 않습니까. 지금도 이름난 주먹 중에 이천 출신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들이 이런 도장을 통해 배출되는 게 아니냐는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먹이 아니라 도인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는 벽에 붙은 관칙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우리 관원은 무도 정신에 입각한 예의, 염치, 인내로 심신을 단련함’ ‘우리 관원은 상호 협력하면서 상경(서로 존경한다는 뜻)하여 관원 상호간에 단결을 굳게 함’ ‘관칙을 준수하고 사범 명령에 절대 복종함’이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
-이천 하면 지금도 전라도 광주나 목포 주먹들이 숨을 골라 쉬면서 돌아간다고 하던데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는 주먹에 대해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역들이 이천 출신의 주먹이다 보니 세속적인 호기심을 끌지 않을 수가 없다.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30대의 한 관원이 끼여들었다. 회사원인 김진창(33)씨였다. 그 역시 사고로 두 팔을 잃고 방황하던 중 사정이 비슷한 김관장 이야기를 듣고 설봉체육관에 입관했다고 한다.
“이천의 건달세계에는 계보가 있습니다. 소멸했다고 하지만 안 그래요. 유지광씨가 작고했을 때 이천에서 10대 소년들이 수계를 받았으니, 그들이 지금은 30대가 되었겠네요. 이처럼 계보가 있습니다. 다만 옛날처럼 노출되지 않을 뿐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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