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엔 만화계도 유신

허영만 화백은 체력 관리를 위해 양재천에서 규칙적으로 자전거를 탄다.

옛날에는 만화와 만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다. 만화책은 공부에 방해되거나 청소년 유해(有害) 도서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라 노트에 만화를 그리면 부모나 교사한테 혼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만화 자체로 어엿한 문화이고 뛰어난 교육 수단이다.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인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의 대표주자가 만화다. 이원복 교수가 그린 ‘먼 나라 이웃나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훌륭한 교과서다. 가나출판사에서 나온 ‘그리스·로마 신화’(만화)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만화산업은 굴뚝산업보다 돈벌이가 잘되는 성장산업이다. 만화영화 ‘라이언 킹’ 한 편의 수익이 국산 자동차 150만대 판매수익과 같다는 분석도 있지 않은가.
“그전에는 책상 앞에서 머리 짜내 써내는 스토리 위주의 만화였지만 지금은 추세가 달라졌죠. 스토리도 현장에 없는 얘기를 끄집어내서는 안 되는 거죠. 소비자들이 정보가 다양한 만화를 선택하죠. ‘식객’도 에듀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어요. 일본 만화에는 그런 것이 많습니다.”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가슴 아픈 때가 있었습니까.
“예비군 훈련장에서 땡볕에 앉아 서로 뭐하냐고 물어보잖아요, 낯선 사람들끼리. 만화 그린다는 얘기를 내 입으로도 하기 어려워 그냥 ‘그림 그려요’ 하고 넘어갔지요. 그런데 다시 ‘무슨 그림요?’ 하고 캐묻는 사람이 있으면 ‘만화 그린다’고 실토했지요. 그러면 제 얼굴을 한 번 더 봐요. 흔한 직업이 아니니까.
해마다 5월 어린이날이면 어린이회관에서 만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량만화 화형식’을 했어요. 우리로서는 김새는 일이었죠. 4∼5월만 되면 심의가 강화됐지요. 그때 ‘각시탈’이라는 제 만화가 히트했어요. 일제 강점기에 탈 쓰고 일본 헌병들하고 싸우는 내용입니다. ‘각시탈’이 히트하니까 너도나도 탈 쓰고 나왔어요. 도서잡지윤리위원회 심의실에서 부르더니 ‘당신 때문에 전부 탈을 쓰고 나오니까 당신부터 그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는 탈을 못 그렸어요. 1970년대 말 이야기죠.”
-유신 때였군요.
“만화계도 유신이었죠. 그러다가 제가 한동안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같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패널로 자주 ‘팔려’ 나갔어요. 만화계 선배들이 좋아했어요. 이제 사회에서 우리를 조금 ‘묵어(알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여튼 만화가를 저급 창작가로 취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어요. 일본에서는 유명 만화가가 죽자 종합일간지 톱기사로 나온 적도 있어요. 그래도 고우영 선생 별세 기사는, 톱으론 안 나왔지만 꽤 크게 실렸더라고요. 방송에도 나오고. 내가 애들과 밥 먹다가 ‘야, 내가 죽어 고우영 선생처럼 다뤄졌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만큼 위상이 달라졌죠.”
“남들이 쉬는 덕분에 中原 차지”
1970년부터 1980년까지는 고우영과 이상무씨의 만화가 인기 절정이었다. 고 화백이 그린 ‘수호지’ ‘금병매’ ‘가루지기’ 같은 만화는 스포츠 신문의 지가를 높였다. 1983년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가 나왔다. 30권으로 완결될 때까지 100만권이 팔렸다. 영화로 만들어져 4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저는 1등은 못 해봤어요. 다행히 지금은 제 또래 사람들이 다 연재 안 하고 쉬니까 혼자서 중원(中原)을 차지하고 있죠(웃음).”
-고우영씨 만화의 애독자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더군요.
“그 양반은 중학생 때 만화가로 데뷔했어요. 저는 어려서 고 화백이 그린 ‘짱구박사’를 봤죠. 고 선생하고 저하고는 15년 골프 친구예요. 매주 금요일에 만났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프셔서 뜸했죠. 지난 3월, ‘치료 대충 끝나면 골프 한번 치자’고 했는데 그 약속 못 지키고 가셨죠. 요즘 67세면 단명이죠.”
-벤츠 SP 타고 골프 치러 다니면 주위 눈치가 보이지 않습니까.
“눈치 보일 때 있죠. 그러나 집과 화실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장소가 자동차입니다. 안전 문제도 있고…. 골프는 요즘 다 치는데요. 옛날에는 눈치 보였죠. 우리 집 지으면서 잠깐 아파트에 세들어 있었는데 집 주인이 나가라고 했어요. 남의 집 세들어 사는 사람이 중형차 타고, 골프 치러 다니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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