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발음이 ‘영미권 사람들과 똑같지 않은 것’과 ‘틀린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그는 ‘틀린 발음’은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우리말로 똑같이 ‘ㄹ’인 R과 L, ‘ㅍ’ 인 P와 F는 음성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건 반드시 정확한 발음을 내도록 스스로 의식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소통에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다.”
7년간의 유학생 생활을 끝낸 뒤 그는 영국의 뉴캐슬대학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하게 됐다. 영어 종주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리(數理)공식도 없는 국제정치를, 그것도 200여 명이 들어찬 대강당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시간을 강의하려면 적어도 5시간씩 준비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그는 ‘정통기본영어’와 ‘성문종합영어’로 공부한 한국 사람도 영국 대학생들을 영어로 당당하게 가르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 비서관 생활을 거친 뒤, 그는 뉴욕대에서 1년간 LLM(법학석사과정)을 공부하며 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bar exam)에도 도전했다. 이틀에 걸친 시험에서 첫째날 객관식 시험은 총 6시간 동안 200문제를 풀도록 돼 있었다. 한 문제의 길이는 거의 두 페이지 분량으로, 108초에 한 문제씩 풀어야 했다. 현지인 수준의 속독(speed reading) 능력이 요구됐다. 45세의 나이였지만 그는 3단계 학습법으로 익힌 독해능력을 바탕으로 전문용어에 대한 보충과정을 통해 결국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영어로 사고하며 개성을 담아라
응용의 단계에 들어서면 ‘나만의 편한 영어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말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보통 ‘저 사람 말 잘한다’와 ‘저 사람 영어 잘한다’를 구분하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다. 한국말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하는 프리토킹을 넘어 나만의 분명하고 창의적인 표현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예외가 없다.”
그는 대통령 공보·정무비서관으로 있던 문민정부 5년 동안 100여 차례에 걸친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영어통역을 전담했다.
1993년 7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청와대 녹지원에서 두 대통령이 함께 새벽 조깅을 마친 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좌우명인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붓글씨로 일필휘지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선사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공보비서관이던 그에게 뜻을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대도무문을 직역해서 “큰 길에는 정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라고 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조금 멋을 부려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라고 설명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싶어 아예 미국 스타일로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는 의미다”라고 설명하니 그때서야 클린턴 대통령은 박장대소했다. 그는 “영어의 응용이 외교에 이바지(?)한 예”라며 웃었다.
또 하나, 김영삼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상징하기 위해 즐겨 쓰는 말인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의 통역에 관한 에피소드다.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이 이 말을 들으면 섬뜩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과거 민주화 투쟁을 해온 김 대통령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 말을 즐겨 사용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 인종차별에 맞서서 평생 민주화 투쟁을 해온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김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특유의 이 표현을 했다.
그는 순간 고민하다가 이렇게 통역했다. “Strangle the rooster, still the dawn breaks(수탉의 목을 졸라도 동은 튼다).” 이 표현은 생각보다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김 대통령과 접견을 마치고 나온 만델라 대통령은 그에게 엄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Strangle the rooster” 하며 웃어 보였다.
그는 “영어가 남의 나라 말이라고 해서 소극적으로 임하지 말고, 더욱 적극적인 사고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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