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
그리고 샘터사에 근무할 때 상사로 만난 작가 정채봉 선생과는 ‘족보에 없는 형제’로 호형호제하는 평생지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문학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선생은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의대에 다니던 친형이 당시 재래식 해부학교실을 구경시켜준 적이 있는데, 그때 충격을 받고 해부실의 풍경, 사체가 포르말린에 둥둥 떠다니는 이미지를 가지고 그대로 소설을 써 ‘위령제’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이후 장편소설을 출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왠지 소설가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의 시세계는 이미 일가를 이루었다. 시와 인생에 대한 그의 잠언적인 말 몇 가지를 소개한다.
“시간은 자기 자신에게 자기가 주는 겁니다. 자기가 주지 않으면 그냥 휙 지나가는 게 시간이라는 거지요. 인생은 시간입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물리적인 시간들을 자신만의 절대적인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그 균형이 깨어지면 졸작을 쓰게 되지요.”
“저의 스승인 황순원 선생은 소설 이외에 잡문을 쓰지 말라고 했고 당신도 그렇게 했지만, 그건 그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시인으로 소설도 쓸 수 있고, 또 시인이 쓸 수 있는 소설이나 산문이 있을 겁니다. 그런 욕심은 가지고 있어요.”
“시 쓰는 일은 자기 삶을 표현하는 한 양식입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 삶을 표현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그 삶의 양식으로 저는 시를 선택했을 따름입니다. 누구나 자기 삶의 양식을 충실히, 그리고 열심히 표현한다면 그의 인생이 바로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끔 새벽에 일어나 청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내 삶의 양식이 저들 삶의 양식보다 더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반문합니다. 아마 내 진정성이 그들보다 더 떨어질 겁니다. 청소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한 자리와 안 한 자리가 너무나 명징하게 드러나지요. 과연 나의 시도 그러할까요?”

밥은 별이고 별은 밥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의 양식이 있는 것이다. 시 쓰는 일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한 양식일 따름이다. 어부가 고기를 잡듯이. 선생은 다른 삶의 양식에 비해 시가 오히려 더 열등한 것이라고 말했다. 타인의 삶에 대한 이러한 경외심은 선생의 시에 절창으로 빛난다. 모든 삶의 양식에는 밥상이 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 산다.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시 ‘밥 먹는 법’ 중에서

그래도 선생의 가난은 따뜻하다. 선생은 시 ‘별들은 따뜻하다’에서 배고픔과 더불어 그 하늘에 떠오른 따뜻한 별들을 노래한다. 그것은 죽음마저 따뜻하게 바라본다. 선생의 시와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나는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에(이런 가정은 부질없긴 하지만) 정호승 시인이 소설을 쓰고 아사다 지로가 시를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호승은 아사다 지로의 소설을, 아사다 지로는 정호승의 시를 쓰지 않았을까.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작품 속에 떠오른 별들엔 국적이 없다. 아사다 지로는 장편소설 ‘지하철’에서 현실은 추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 역시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그런 세상에도 아름다운 것은 늘 확실히 존재한다면서 이런 문장을 남긴다.
‘그 아름다운 것을 나는 아름다운 그대로 쓰고 싶다.’
이 문장은 정호승 선생의 시 세계인 밥과 별과 다를 게 없다. 정호승 시인의 밥은 별이고, 별은 밥이다. 이 둘은 두 바퀴처럼 정호승의 몸을 굴리고 민다. 선생의 시는 바퀴다. 밥과 별로 만들어진 바퀴. 그걸 읽으면 그런 바퀴를 굴리면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늘 확실히 존재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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