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토지’를 한과 민족과 생명사상이라는 주제를 식민지 자본주의의 전개과정 속에서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해하는 비평가도 있다. ‘토지’의 주제와 사상 및 작품의 형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된 바 있지만, 김성수(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일제의 식민지 자본주의에 대한 총괄적 대항 서사로 읽는다. ‘토지’의 서사적 깊이와 공간적 범위가 보여주듯, 우리 근대사가 포착할 수 있는 한민족 삶의 소망스러운 형태에 관한 염원을 가장 포괄적인 서사를 통해 복원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수는 작품의 서장으로부터 종결부에 이르기까지 토지는 땅·농토·소작료·지주(제) 등 농민들의 생존문제를 포함해 식민지 자본주의의 유입과 그에 따른 근대화 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작품 전체의 기조로 삼고 있다고 보았다. ‘토지’는 단지 자연 상태의 대지나 소유개념이 불분명한 땅에 얽힌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소유개념이 당대를 사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과 제도를 어떻게 변화시켜갔는지에 대한 작가의 정치경제적 상상력을 총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토지’는 자본의 자기확장이라는 목적이 가장 폭력적으로 구현되는 식민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장을 서사 구성과 전개의 주요 모티프로 삼아 ‘한과 민족주의와 생명사상의 고양’이라는 주제를 생성한 작품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지’는 작품에 내장된 일제 강점기의 여러 현상, 즉 지식인과 일본문화·한국문화의 변별성 문제, 일제 강점기의 도시화 과정과 풍속 등에 관한 미시적인 분석과 해석을 세밀하게 탐구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토지’를 통해 전개된 작가의 생명사상은 그의 문학적 본질이면서 문학을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잉태됐다. 작가가 ‘토지’를 쓰던 한 세대 전만 해도 공해나 생태문제는 사회문제의 관심권 밖이었다. 작가는 청계천 복원을 촉구한 선구적 제창자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환경론 수준을 넘어 자연의 위대함, 그것의 가치와 삶의 조화를 고양하는 생명론자로서의 우주적 사유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토지문화관.

박경리란 작가에 대해서 어느 평자는 그 정신의 도저함에서 비롯되는 감동을 말한다. 그는 현실과 권력으로부터 수많은 억압과 피해를 당했지만, 전혀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고 버텼다. 그는 인기를 혐오했고 명예를 사절했다. 그는 사람들이 비굴하고 천박한 것을 단연 싫어했다. 예술원 회원 되기를 끝내 거부한 것도, 언론을 한사코 기피한 것도 그런 생래의 체질이었다.
그러나 1999년 토지문화관을 만들고 재단을 구성한 것은 젊은 작가들에게 창작의 산실을 마련해주려는 배려에서였다. 그는 역사를 따뜻하게 관찰했고, 상황을 냉정하게 직시했으며, 자연과 공감하며 소통했으며, 생명을 보듬어 안았다. 무엇보다 인간적 품위를 우선적 가치로 삼았다.
일대 장엄한 서사 ‘토지’는 그래서 가능했고, 독자는 작품을 존중했으며, 작가는 정상의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각종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토지’는 1980년대의 한 조사에서 한국문학 30년의 최대 문제작 3편 중 하나로 꼽혔고,
5월8일 열린 박경리의 노제.

1990년대의 한 조사에서는 광복 이후 한국의 대표소설 또는 건국 이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혔다. 또 2000년대 들어 작가 박경리는 세계에 알리고 싶은 문인 1위, 노벨문학상 가능성 후보 1위로 꼽히는 등 박경리와 그의 ‘토지’는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1989년 9월의 한 신문은 ‘토지’가 20년 통산 판매 1위의 작품으로 당시까지 120여만부가 판매되었다는 종로서적의 집계결과를 발표했다. ‘토지’ 5부작 16권은 2002년 나남출판사에서 전21권으로 재출간되자마자 1주일간 4000질(8만4000부) 가량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출판계에서는 ‘토지’에 대해 “한국의 현대문학은 박경리의 ‘토지’로 인해 풍요로울 수 있었다”며 찬사와 존경을 표했다.
지난 5월5일 “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현대문학’ 4월호 발표, ‘옛날의 그 집’)는 시 한 편을 남긴 채 박경리는 홀연 이 세상을 떠났다.


尹武漢
● 1943년 대구 출생
● 고려대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경향신문 정경문화부장·부국장, 민주일보 편집국장
● 1993~98년 대통령비서실 통치사료비서관, 강원대 사학과 초빙교수
● 저서 및 논문 : ‘인물대한민국사’ ‘한국사 정립을 위한 새로운 시론’
5월9일에는 한산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기슭 별이 가득한 하늘의 대지에 몸을 뉘었다.
1971년 가슴의 암 수술을 받기 바로 전날 동대문쪽으로부터 남산까지 길게 걸린 무지개를 보면서 죽음이 자기를 데려가려나 보다고 여겼던 박경리,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뒤 박경리는 수만리 장천을 날갯죽지 하나로 날아갔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에 자신을 지탱해가면서 진실만을 기록했던 사마천(司馬遷)의 그 ‘멀미 같은 시간’을 앓은 뒤, 작가는 마침내 영혼을 육신에서 빼내 나비처럼 전혀 다른 세상으로 훨훨 날아오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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