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구절양장, 무수한 덤불과 가시밭길, 세찬 파도와 폭풍의 언덕을 넘어간 세월이었다. ‘토지’ 1부를 연재 중이던 1971년 8월에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암과 피나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3시간의 수술 끝에 보름 만에 퇴원한 바로 그날부터 작가는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토지’를 썼다. 악착스러운 자신에 무서움을 느낄 정도였다 한다.
“어찌하여 빙벽(氷壁)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작가는 전신에 엄습해오는 통증과 시력의 감퇴 등 붕괴되어가는 체력과 맹렬하게 싸웠다. 오죽하면 ‘구약’의 ‘욥기’를 떠올리며 위안을 받았을까. 전쟁 중에 남편을 잃어 일찍 청상이 되었고, 그런 몸으로 기른 딸의 지아비로 맞아들인 사위 김지하는 1974년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확신범이었다. 1974년부터 신문기자로 밥벌이를 한 소설가 김훈은 1975년 2월15일 김지하가 형집행정지로 영등포교도소에서 출감하던 어둑한 시간, 교도소 광장 건너 언덕에서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바로 손자를 업은 박경리였다. 그날 밤 김훈은 신문사로 돌아가 마지막 기사를 작성했으나 박경리에 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한다. 어쩐지 그 모습은 말해서는 안 될 일인 것 같았다(솔 출판사, ‘수정의 메아리’, 1994)고 한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었다.
상황은 어려웠고 쌓이는 한의 뭉치는 더 커져만 갔다. 그 와중에도 박경리는 거실에서 포대기에 손자를 업은 채 원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현실에 대한 원한이 오기가 되어 그를 자존의 삶으로 끌어올렸다. “글 기둥 하나 잡고 눈먼 말처럼 연자매 돌리며” 운명처럼 작가는 ‘토지’를 썼다.
영험한 산자락이 지란을 숨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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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그 남편 김지하.
작가는 원주집 텃밭에서 한 세대에 가까운 세월 절대고독을 천명으로 견디며, ‘생명주의’의 삶과 사상을 일구어냈다. 그는 땅처럼 후한 인심은 없다고 했다. “뿌린 것에다 백배 천배의 이자를 붙여서 갚아주는 게 땅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전 까먹지 말고 이자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박경리가 아침 일찍 텃밭을 기다시피 엎드려 김을 매는 모습은 땅에 대한 경배와 같았다고 그를 만난 이들은 회고했다.
원주의 단구동 집에는 황토 빛이 밴 수많은 면장갑이 베란다 난간에 널려 있었다. 그곳을 찾아오는 문단의 후배나 지인들은 누구나 작가가 텃밭에서 손수 가꾼 채소나 대추·오가피·두릅·취나물·고들빼기 등을 구메구메 싸주던 작가의 모습에서 언제 꺼내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그리운 고향집의 흑백사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소설이란 박경리에게 삶과 생명의 문제였다. 그러나 소설이 인생보다 크고 소중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무리 위대한 예술도 그 터전으로서의 삶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했다. 삶 속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 그것이 삶에의 연민이며, 그것이 다시 한의 언어로 승화되어 ‘토지’가 탄생했다. 작가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던 자의식의 언어가 타(他)자아의 언어로 발전한 것이다.
당초 ‘토지’ 1부를 구상할 때 작가는 ‘타(他)자아’와 ‘객관적 거리’로 삶과 죽음을 포옹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등짐장수로부터 몰락하는 귀족에 이르는 인생을 두루 섭렵하면서 초기의 꿈은 우주관으로 발전한다. 마침내는 한반도의 문화역량이 러시아대륙과 중국대륙에 버금갈 수 있음을 깨달아갔다. 일상적 삽화를 통해 전개되는 작품이 한민족의 서사시처럼 다가오는 것은 작가의 원숙해진 ‘모신(母神)의 시선’에 있다.
다른 대하소설에는 계급과 이데올로기 등의 어떤 중추계통이 있다. 그런데 ‘토지’는 600~700명에 달하는 수다한 계급과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봇짐장수와 시장거리의 할머니도 나온다. 그들 모두는 총체적 존재로서 등장한다. 생명이 그 핵심이고, 탄생과 죽음, 긍정과 부정이 부딪치는 모순, 그 한을 덩어리째 받아들인다. 작가는 ‘토지’에서 영험한 산이 지란(芝蘭)을 자락에 숨기듯 수많은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게 했다.
한과 민족과 생명을 주제로
‘토지’라는 제목과 관련, 작가는 소유의 출발로 문서를 생각했고, 문서화된 토지로부터 인간의 비극이 시작되었음을 꿰뚫어보게 되었다. 소유개념은 인간의 비극뿐만 아니라 개인의 비극, 국가와 민족 간의 비극을 불러일으켰고, 오늘날 자본주의로써 지구를 파괴하는 환경과 생태계 문제에까지 그 영향을 확장시켜 나간 것으로 작가는 사유를 확대, 심화시켰다.
‘토지’에는 또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비극이 담겨 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개인이거나 영웅이거나, 혁명가이거나 등짐장수, 심지어는 작부에 이르기까지 토지는 생명을 담아내는 거대한 호수와 같다. 어느 시대 어떤 장소에서 생명들이 무수하게 흘러가고, 그러면서 만약 죽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유한성을 안은 채, 토지는 비극이면서 축복이고, 운명이면서 사랑이고, 삶에 대한 연민이면서 다른 세계와 교신하려는 간절함이 담긴 삶의 젖줄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