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절 아내를 만나다



그의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세미프로 생활을 하며 최경주는 친구집에 얹혀사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언제 정식프로가 될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시절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아내가 된 김현정씨를 만나는 일이었다.

-아내를 처음 보고 ‘이 사람이 평생 반려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가요.

“솔직히 말해 과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둘째 문제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나 서로 생각하는 것에 공통분모가 얼마나 있을까가 가장 큰 문제였죠. 그런데 만날수록 정이 가고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찌 보면 김현정씨와 최경주 커플은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경주는 섬에서 태어나 수업도 제대로 받지 않은 운동선수. 하지만 아내는 단국대 법대를 졸업한 재원이다.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에는 어색했다고 한다. 최경주가 독실한 신자도 아닌데다 오로지 운동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명시절이었으니 오죽했으랴.

결혼 후에도 김현정씨는 계속 직장에 다니며 최선수의 뒷바라지를 했다. 아내가 월급을 타면 회식을 했다. 그러나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당시 골프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었나요? 프로선수의 미래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프로가 되면 파라다이스가 열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죠. 프로가 된 후에도 ‘모셔가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정식 프로자격을 받은 것이 짐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습니다. 세미프로처럼 아무 연습장이나 가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이 무렵 그는 잠시 딴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프로를 포기하고 취직을 할까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다 결국 인천의 한 연습장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자신 때문에 다른 한 선배 프로가 그곳 연습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최경주는 필자에게 ‘지금까지도 그 선배가 마음에 걸린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미국PGA투어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뛰어난 기량과 정신력입니다. 여기에 샷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제가 처음에 고생을 하고 성적을 내지 못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 그린은 딱딱하고 빠릅니다. 따라서 어프로치나 짧은 아이언이 들어오면 그린에 세울 수 있는 기술 샷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스핀이 걸리지 않으면 그린에 맞아도 튀어나가기 쉽기 때문이죠. 미국 진출 후 2년 동안 이것을 터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최경주가 필자에게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미국 그린에 적응하기 어렵다.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역마다 잔디종류가 다른데다가 그린 빠르기도 차이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기술 샷을 구사하지 못하면 미국투어에서 살아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 편지는 ‘이제야 5번 아이언 정도까지 스핀을 걸 수 있게 됐다. 욕심을 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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