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싫어 시작한 골프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보자. 최경주는 어떻게 골프를 시작했을까. 박세리, 박지은은 부친이 골프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최경주는 또래에 비해 아주 어렵게 골프에 입문했다. 당시 다른 선수들은 캐디보다는 체계적인 골프를 터득하며 국가대표나 상비군을 대부분 지냈고, 일부 여유 있는 선수들은 미국이나 호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완도의 연습장에서 볼 줍는 일을 하면서 골프를 배웠다면 체계적인 골프교육을 받지 못했을 텐데….

“골프와의 인연은 내게 아주 각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었는데 운동부에 들면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중학교 때 역도부에 들어간 것이죠. 이때 아마 ‘통뼈’가 되지 않았나 해요. 처음부터 골프를 한 건 아니었고요.”

이런 것을 보고 운명의 힘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어느 날 섬마을 완도에 8타석의 연습장이 들어섰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인연으로 결국 골프클럽을 잡게 된 것이다.

-연습장 시절 얘기를 좀 해주시죠.

“학교 갔다가 가방을 멘 채로 친구들끼리 어울려 놀러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어린 나이에 속도 많이 상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골프를 배운다는 핑계로 수업에 빠졌지만 실은 학비를 벌 욕심이 더 컸죠. 손님의 연습이 끝난 뒤 별을 보면서 볼을 치는 것으로 이런 응어리를 풀었습니다. 손에 굳은살이 배기면서 점점 샷이 좋아졌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두번째 인연이 이때 생긴다. 한서고등학교 최재천 재단이사장이 우연히 연습장에 들른 것. 이곳에서 최이사장은 최경주에게 ‘이왕이면 서울에서 연습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제의했고, 최경주는 무조건 서울행 기차를 탔다. 이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옮기는 과정에서 몇 개월 허송하기도 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고향으로 다시 내려온 적도 있었지만 끝내 한서고등학교 편입에 성공한 그는 이후 골프만이 유일한 살길인 듯 혹독한 훈련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잊지 못할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에 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한번은 아버지(최병선·59)가 서울에 올라오셨는데, 제가 냉방에서 자는 것을 보고 무척 마음 아파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너무 많은 연습량으로 손바닥이 마치 거북등처럼 변해 있는 것을 보신 어머니(서실례·53)와 아버지가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힘든 미국투어 생활의 버팀목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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