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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은 실연의 아픔이 자신을 성숙시켰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진통이 온다는 어머니 말을 듣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리고 사흘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네에 수소문을 해서 아들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번에도 속인다 생각하고 들어오지 않았다. 제동이 세상에 태어나 사흘째 되는 날 고추를 확인하고 나서 3일간 동네 잔치를 벌여 집안살림을 거덜내다시피 했다.
“돌아가시기 두 시간 전에 ‘우리 아들 고추 한번 봐야겠다’고 하시는 걸 어머니가 ‘이 양반 주책 그만 부리라’고 핀잔을 주어 옆방으로 건너가 잠드셨다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늦게 둔 아들을 한번 보러 오셨던 모양이라고 어머니가 늘 말씀하십니다.”
-홈페이지에 가수 김광석 추모 코너가 있는 게 특이하더군요.
“김광석을 좋아합니다. 그분이 생존해 있을 때는 못 만나봤습니다. 그분 노래는 듣는 이를 깊은 슬픔의 심연으로 데리고 내려갑니다. 희망을 주는 노래도 있지만 주로 이별과 실연이 주제죠.”
김광석은 김민기와 한대수의 맥을 잇는 가수로 인정받으며 1990년대에 포크 음악을 이어갔다. 대학 4학년 때 통기타 업소에서 노래를 하다 1984년 대학가 운동권 노래패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결성되면서 무대에 섰다. 1989년 솔로로 데뷔해 2집 ‘사랑했지만’이라는 곡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1989 ~95년 1000회 라이브 콘서트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6년 자살로 31세의 생을 마감했다.
김제동은 노래방에 가면 김광석 노래만 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했지만’…. 김광석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며 부른다. 노래 솜씨는 그저 그렇다.
“극도로 슬프면 엉엉 소리내 울기보다 슬픔을 목까지 꽉 채워놓게 되지요. 입 꽉 깨물고 눈물 뚝뚝 떨어지는 게 더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잖아요. 김광석 노래가 그렇습니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뜨고 나서 돈을 꽤 모았다는 소문이 자자해요. CF를 3편이나 찍었으니 강남에 좋은 집 한 채 살 돈은 벌었을 것 같은데요.
“누나들을 도와주고요. 어머니 집 융자 4500만원 남아 있던 것 갚아드렸고. 에이스미디어와 수익 배분을 해야 하고 세금도 내야 하고…. 그 외에는 돈 쓰는 데가 없으니까 꽤 모았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잘살지는 않을 겁니다. 내 나름대로 구상이 있어요.”
“옷 사는 돈이 제일 아깝다”
-한달 용돈은 얼마나 써요. 순수한 개념의 용돈 말입니다.
“수입은 어머니가 관리합니다. 일단 어머니 통장으로 집어넣고 용돈을 타 쓰죠. 연세 드신 분들은 그래야 포만감이 생깁니다.”
-효자네요.
“다들 그러더군요. 옷 사는 돈이 제일 아깝습니다. 방송에서는 협찬해주는 옷을 입고 나서 돌려주니까 일주일에 두 벌 정도 갈아입으면 돼요. 술값이 꽤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그래봐야 소주값이지만. 한달에 한 40만~50만원 쓸까요. 서민들은 어렵게 사는데 한달에 용돈을 50만원 쓴다고 하면 욕먹지 않을까요. 돈 쓸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일주일에 6일 일하고 하루 쉬는데 소주를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습니까. 애인이 없어 영화도 혼자 보러 가지요. 애인 옷 사줄 일도 없고.”
제동은 서울 마포의 28평짜리 아파트에서 자취를 한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 60만원짜리 월세다. 자동차는 소렌토. 하루 한 끼는 라면이다. 김치 한 보시기 놓고 라면에 밥 말아서 먹는 것이 김제동의 자취방 메인디시다.
-외식할 때 무슨 음식을 좋아합니까.
“주로 청국장, 된장찌개, 김치, 두부.”
김제동은 술을 좋아한다. 소주 세 병 정도는 거뜬히 마신다.
“소주 안주로 두부김치를 좋아합니다. 고기는 즐기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동물 두드려 잡는 걸 워낙 많이 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 중요하거든요. 돈에 관한 철학은….
“용돈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고 내가 벌어 내가 썼으니까 어려서부터 돈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투루 쓰지 않고 필요한 곳에만 쓰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거기서 경제적인 가치가 창출되니까 너무나 좋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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