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부대에 갈 때는 전차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갔습니다. 전차부대에 가면 중대장이 아니고 전차장이거든요. 의사들 행사에 가게 되면 병원 용어를 공부합니다. 다른 공연에서 ‘혈압 오르게 하지 말아요’ 할 것을 의사 간호사 모임에서는 ‘BP(Blood Pressure) 올라가네요’합니다. 그러면 더 웃죠. 검사들 모임 사회 볼 때는 노래 못하면 영장실질심사도 없이 법정구속하겠다고 위협을 합니다. 언제 그 사람들이 구속시킨다는 협박을 당해봤겠어요.”
“그녀는 내 인생의 물푸레나무”
-텔레비전에서 가족 얘기를 자주 한다던데요. 어머니가 재밌는 분이라면서요. 어떤 분입니까.
“72세이신데 전형적인 농촌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거침 없고. 당신께는 결례되는 표현이지만 약간 주책 없으신 분이죠.”
김제동의 어머니와 누나들이 ‘아침마당’에 생방송으로 출연하기 위해 대구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오다 휴게소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일행을 만났다. 어머니는 인파와 경호원들을 헤치고 당선자에게 접근했다. 경호원들이 제지하자 당선자가 ‘칠순 노인인데 놔두라’고 했다. 어머니는 당선자와 악수를 하고 나서 아들 이름을 대면 모를 것 같으니까 ‘윤도현 아느냐’고 물었다.
“노 당선자가 ‘아, 도현이 어머님 되세요’ 하니까 어머니는 윤도현 프로에 나오는 김제동 엄마라고 했대요. 당선자가 ‘어머니, 정말 죄송한데 김제동은 모르겠습니다’면서 ‘알아보겠다’고 하더래요. 김제동이 별로 유명하지 않을 때였으니까요. 어머니는 계속 당선자를 붙잡고 잘난 아들 덕에 내일 ‘아침마당’에 출연하는데 ‘꼭 보시소’라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대통령이 볼 테니 방송에 나가 잘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씀했어요. 실수하면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정작 실수는 어머니가 했어요.”
인터뷰가 끝나면 카메라 없는 쪽으로 돌아나와야 되는데 어머니는 카메라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그 바람에 어머니의 코가 2, 3초 동안 클로즈업되는 방송사고가 생겼다.
“첫사랑 데리고 집에 인사시키러 갔습니다. 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오셔서 그 여자의 손을 잡고 한 첫마디가 ‘고맙다’였죠. ‘우야든지 마음 변하지 말고 잘 만나봐라. 우야다가 야 같은 놈을 만났노’ 하는 식이죠.
대구에서 반지하 셋방에 살다가 18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을 때 어머니가 고집을 부려 아파트에 어머니 이름으로 문패를 달았어요.”
-여성에게 먼저 좋아한다는 말을 안 하니까 차일 기회는 없었겠네요.
“1998년에 가슴 아픈 실연을 했어요. 예쁘고 참하고 똑똑한 여자였어요. 계명문화대학 축제 때 만났죠. 2년 가량 사귀고 나서 싫다며 떠나갔어요. 그녀는 내게 세상이자 우주였습니다. 이 여자 얼굴 보라고 낮이 있는 것 같고 이 사람 잠자고 편하게 쉬라고 밤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 여자가 김형을 버릴 때는 이렇게 출세할지 몰랐겠지요. 지금 아마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고맙게 생각해요. 옛날에 어사가 장원급제해서 고향마을에 돌아오면 집 앞 물푸레나무한테 절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훈장들이 꺾어서 회초리 만드는 나무지요. 회초리 맞아서 열심히 공부해 출세했으니까요. 그녀는 내 인생의 물푸레나무였습니다. 마음이 몹시 아팠지요.”
-김형이 유명해진 뒤에 혹시 연락 안 왔어요?
“결혼했을 거고 잘 살겠죠. 진짜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 없었으면 사랑이 뭔지, 이별이 뭔지도 몰랐을 겁니다.”
-현재 사귀는 여자는 있습니까.
“중매 좀 서달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김광석 노래 너무 좋아
김제동의 부친은 당시 농촌마을에서는 드물게 고등학교를 나온 ‘인텔리’였다.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수재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전언이니까 수석졸업은 조금 과장된 것일 수 있다고 토를 달았다.
“방송국에서 상 받을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죠. 야속하기도 하구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면서 아버지 없는 사람 손 들라고 하거든요. 모두 눈 감으라고 한 뒤 손 들게 하지만 그 나이 때 아이들이 궁금해서 눈을 온전하게 감나요. 교사는 아이들을 따로 불러서 생활기록부를 적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동을 엄하게 키웠다. 동네에서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가 한번이라도 어머니 귀에 들어갔다 하면 그날은 제동이 죽는 날이었다. 동네 어른을 미처 못 봐서 인사를 못 드린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친은 제동이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진짜로 아들을 낳은 것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셋째누나 때부터 아버지를 속였다. 아버지가 딸을 낳은 것을 알면 속상해서 술을 마시니까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저귀를 들춰보지 못하게 했다. 제동은 다섯째누나하고 일곱 살이나 터울이 진다. 그만 낳으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제동이 생겼다. 어머니는 임신 3개월째 되는 날 태아를 지우려고 병원에 가다가 집에 급한 일이 생겨 되돌아왔다. 4개월째도 병원에 가다가 집에서 소가 새끼 낳는다고 해서 돌아왔다. 5개월째 될 때도 지우려고 했는데 외할머니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아기 지우는 약도 먹어보았지만 잘난 아들을 보려고 그랬던지 떨어지지 않았다. 6개월째 드디어 병원 안에까지 들어갔는데 의사가 그냥 낳으라고 했다. 산모가 위험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제동이 태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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