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화에 김 감독의 삶이 배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이 있죠. 다른 감독이 배워서 영화를 만든다면 저는 살면서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책 따위는 별로 읽지 않아요. ‘수취인불명’이 제 삶을 가장 많이 담은 영화죠. ‘해안선’에는 해병대에서의 경험이, ‘야생동물보호구역’에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이 녹아들어갔고요. ‘나쁜 남자’와 ‘사마리아’는 간접적으로만 바라봤어요. 나머지 영화들은 현실에서 모티브를 잡고 제 상상의 나래를 편 작품들입니다.”
어느덧 약속한 2시간이 지나갔다. 김 감독은 오후 5시에 경기도 일산 근처에서 약속이 있다고 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벽을 허물고 이제 좀 속 깊은 얘기를 해볼까 했더니 시간이 다 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산으로 가는 김 감독의 2인승 코란도에 무작정 올라탔다. 그렇게 인터뷰가 이어졌다.
-차가 2인승이네요.
“지난해부터 운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좀 곤란해요(웃음). 차는 곧 바꾸려고 해요. 2인승이라 가족과 같이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불편하더군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해요”
그는 결혼도 했고 초등학교 2학년짜리 딸도 있고 노부모도 살아계시다.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후에도 “가족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그는 “반지도 없고, 행색도 그렇고, 영화를 봐도 결혼했을 것 같지 않은지 사람들은 내게 좀처럼 결혼했냐고 묻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가족에 대해 말을 아끼는 건 사실이다.
“아버지에 대해 별 생각 없이 한 얘기들이 아버지께 너무 큰 상처가 됐어요. 이젠 웬만하면 가족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합니다. 제가 영화감독이지 가족이 감독인 것은 아니잖아요. 저로 인해 그들의 삶이 방해받으면 안 되죠. 특히 딸아이가 아버지 때문에 특혜를 받거나 상처를 받는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아요.”
-부인과 사이는 좋으신가요?
무례한 질문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1993년 결혼한 부인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저 프랑스에 있을 때 편지로 교제했다는 정도말고는. 혹시 그가 영화에서 그린 것 같은 사랑을 하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다.
“노코멘트. 가족 이야기는 안 할래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 또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이가 좋은지 묻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자체가 아내한테 미안한 일이죠. 또 제 영화가 그리는 사랑의 이미지는 그 사람과 무관합니다.”
-사랑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남녀간의 사랑을 묻는 거죠? 그건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이겠죠. 만나자마자 손잡고 껴안고 섹스할 수도 있고요. 한순간 쾌락일지라도 그때만큼은 사랑이죠. 하지만 사랑은 일방적인 강요가 되어선 안 돼요. 그런 면에서 제 영화의 사랑과 제가 추구하는 사랑은 다르죠. 저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냥 느낌이 좋으면 편안해하고 좋아해요. 하지만 제 사랑을 강요하진 않죠. 싫다고 하면 깨끗하게 놓아줘요. 제 사랑이 또는 제가 추구하는 쾌락이 상대방에게 고통이 되어선 안 되니까요. 그렇기에 사람과 관계 맺기를 굉장히 두려워하죠. 편해지는 느낌, 좋아하는 마음이 두려워요. 내가 약해질까봐, 또 상처받을까봐. 그런 후유증은 정말 오래가거든요.”
내친김에 무례한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그와 관련된 소문들에 대한. 예상한 대로 그는 발끈했다.
“좀전에 말했듯 저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강요하는 사람도,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 루머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정말 무서워지는군요.”
세심하고 연약한 사람
어느덧 일산이다. 예정보다 빨리 도착했기에 지하철 3호선 원당역 근처 자그마한 동산으로 산책을 갔다. 제법 찬 가을바람에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그는 오솔길을 걸으면서 길가에 떨어진 밤을 줍더니 대충 껍질을 벗겨 입속에 넣는다. 기자에게도 하나 건넸다. 한입 깨무니 고소하다.
“집 근처라 종종 혼자서 오곤 해요. 땅에 떨어진 밤을 주워 먹기도 하고, 차에 혼자 누워서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시골 태생이라 그런지 이런 곳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느낌이 달랐다. 이 사람이 아까 전통찻집에서 우리 영화계에 대해 날 선 독설을 퍼붓던 그 사람인가. 그는 거듭 말한다. 자신은 무척이나 세심하고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사람이라고. 그랬다. 그는 자신의 한마디,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거친 외피 안에 부드러운 속살을 감추고 있는 생률(生栗) 같은 사람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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