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이 아니라 ‘빈 집’을 찍었다”


9월12일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받아들고 극중 태석의 ‘유령연습’ 상징인 ‘눈’ 그림을 보여주는 김기덕 감독.

김기덕 감독은 지난 2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사마리아’가 혹시 김 감독과 관련된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마리아’가 원조교제를 다룬 영화기에 그 질문은 “당신도 원조교제를 한 게 아니냐”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이창동 감독이 만들면 ‘사회를 보는 시선’이고 김기덕이 만들면 ‘지가 하는 짓’이라는 편견이 있다”고 했다.
“‘나쁜 남자’를 보고 ‘김기덕은 자기 여자한테도 그럴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게 인간입니까. 저는 공격적이지도 않고 남의 인생을 망가뜨릴 만큼 못된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잘 믿고,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그러고 나선 상처받고 후회하는 나약한 인간이죠. 제게 학력 콤플렉스와 제도권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비제도권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 만들면 저열한 것으로 취급하죠. 난 그게 배운 사람들의 열등감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김 감독도 아웃사이더, 비제도권, 언더가 아니라 완전한 인사이더입니다. ‘권력’까지 잡은 것 아닙니까.
“권력이라…. 물론 잡았죠. ‘표현의 권력’ 말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졌죠. 차도 몰고 다니고 골프도 치니까. 하지만 이건 한국사회가 준 것이 아닙니다. 해외의 평가를 통해서 주어진 것이죠. ‘봄’ 이전의 작품들이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종상이나 청룡상 후보로도 안 올랐어요. ‘봄’ 이후로 상을 받기 시작했죠. 외국에서 인정해주니 국내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지. 하긴 제 영화가 국제영화제 후보에 오르자 일각에선 ‘우연이다’ ‘행운이다’라고 평가하더군요. 올해 들어 사자(베니스영화제)랑 곰(베를린영화제), 표범(로카르노영화제)을 받아오니까 비로소 다르게 쳐다보는 거죠.
요즘은 길거리에서 사인해달라는 분이 많아요(인터뷰 중에도 3명의 팬이 사인을 받아갔다). 하지만 다 허수아비 시선이에요. 사인 받는 분들께 ‘제 영화를 보셨나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아직 못 봤는데요’라고 해요. 제 영화를 이해하려는 게 아니죠. 저는 그런 시선들이 전혀 반갑지 않아요. ‘빈 집’도 크게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습니다. 아마 10만명쯤 보러오지 않을까요?”

영화 ‘빈 집’에서 선화와 태석이 재회하는 장면.

김기덕 감독은 언젠가부터 국내보다는 해외시장을 겨냥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빈 집’에서 대사를 없앤 것도 그런 의도에서다. 현재 ‘빈 집’은 해외시장에서 100만달러(약 12억원)의 수익을 내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해외에 두터운 팬층 있는 그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본 영화는 내 영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는 ‘베니스의 권상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단연 최고의 스타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외국 관객이 많이 찾은 영화도 그의 작품들이다. ‘봄’은 미국 영화시장에서 흥행수입 200만달러를 돌파했고, 러시아 등 유럽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외국인은 제 영화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장동건이 누군지, 이승연이 누군지도 모르죠. 영화의 본질만 봐요. 이승연의 누드가 언제 나오는지에만 관심 있는 관객과는 차원이 다르죠. 국내에선 스타가 나와야 훌륭한 영화로 대접받잖아요.
-김 감독 영화에는 스타들이 거의 출연하지 않죠.
“‘빈 집’을 만들 때도 이른바 스타들에게 먼저 섭외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안 돼서 승연씨가 하게 된 거죠. 남자주인공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톱스타를 섭외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어요. 하기야 스타가 제 영화에 나오려고 하겠어요? 돈도 조금밖에 못 주는데. 예전에 제 영화에 출연했다가 요즘 톱스타로 부상한 배우에게도 출연제의를 했는데 가타부타 답도 주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신인배우들과 작업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를 무척 꼼꼼하게 쓰는 편입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배우가 잘 흡수하면 좋은 연기가 나오는 거죠. 그런데 톱스타가 대본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채 잘난 체만 하고 자기들 스케줄에 맞춰서 촬영해야 한다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어요? 전 배우의 스케줄에 맞춰 일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감독들보다 영화를 빨리 찍을 수 있는 겁니다.”
-‘위안부 누드’ 파동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다시피 한 이승연씨를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승연씨 출연을 놓고 논란이 거세지자 “이승연 캐스팅이 불편을 줬다면 사과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진심이라기보다는 약간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논란이 뜨거워져 저도 인터넷에 들어가봤습니다. 승연씨에 대해 정말 끔찍하게 얘기하더군요. 한국에 정말 ‘악마’가 많구나 싶었어요. 승연씨는 ‘선화’를 진지하게 잘 읽어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이건 마치 선화의 꿈인 것 같아요’라고 했어요. 바로 제가 말하고자 하던 바였죠. 그래서 캐스팅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승연을 찍은 게 아니고 ‘빈 집’을 찍은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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