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공직에 몸담아 절제하며 사느라 별 재미를 키우지 못한 아들과 달리, 아버지는 멋을 아셨다. 우리 집안의 딸들과 며느리들은 집안 남자 가운데 제일 멋있는 남자로 아버지를 꼽는다. 하이데거를 읽던 서재의 벽은 은은한 옥색 한지로 도배가 돼 있었고 난초를 키우셨으며 가야금과 창을 배우셨다. 불교철학을 연구하실 때에는 모차르트 음악에 심취하시기도 했다.
외출하실 때면 옥색 두루마기를 입곤 하셨는데, 휘날리는 흰 수염과도 잘 어울렸다. 물론 언제라도 입으실 수 있게 두루마기를 준비하신 어머니에게는 고역이었겠지만 말이다. 동숭동에서 함께 사실 때는 대학생 손자들을 데리고 동네 호프집을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셨다. 그때 머리에 눌러쓰신 베레모가 멋있어서 자세히 보니 내가 오래 전 쓰다 버린 서울대 교모였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멋을 잘 모른다. 베레모 같은 것은 쓸 엄두도 못 내봤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추구하신 멋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이데거와 불교철학, 참선과 모차르트, 혹시 아버지는 상반되어 보이는 것 속에서 조화를 얻으려고 하셨던 것이 아닐까.
참선과 모차르트
항상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쏠리기 쉬운 사람의 마음과 세상의 흐름 속에서 중용과 평형을 찾아내고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며 원융회통(圓融會通)을 이루는 것, 이런 마음가짐 속에서 나와 만년의 아버지는 무언으로 통했다. 조화와 중용의 정신이야말로 큰 키, 남다른 건강, 뜻한 일은 이루는 의지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高建
●1938년 서울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도시계획), 미국 하버드대 수학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전라남도지사, 교통부 장관, 제12대 국회의원, 서울시장(1988년 임명직, 1998년 민선), 명지대 총장, 제30대 국무총리, 대통령권한대행
●現 환경포럼 공동대표

이제 아버지는 가셨다. 멋있던 아버지, 어려서는 자상한 가정교사이셨고 자라서는 따뜻한 후원자이셨으며 장성해서는 공직생활의 든든한 자문역이셨던 아버지는 떠나셨다. 아버지가 키우시던 난초는 며느리들이, 남쪽 창 밑의 대나무는 내가 가꾸고 있다. 잘 자란다. 그러나 잘 자랄수록 떠나간 아버지의 흔적이 더 크게 느껴진다. 당시에는 벅찬 일정에 번거롭기도 했던 깨알 같은 글씨의 ‘가신(家信)’이 너무도 그립다. 세상이 소란하고 앞이 안 보일수록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허전하게 만든다.   (끝)


글: 고건 전 국무총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