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산 아래에서 아버지가 친구, 제자들과 술자리 담론을 즐기는 것을 보고 자란 나 역시 직원들과 소줏자리에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 좋아한다. 사실, 공직생활 중 직원들의 진솔한 얘기는 사무실이 아니라 이런 소줏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게 마련이다.
세 번째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대신 나는 새로운 계율을 만들어 실천하기로 했다. 바로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의미의 ‘일일신(日日新)’이다. 세상은 변하고 이에 따라 행정의 환경도 변한다. 따라서 행정의 사고, 일하는 방식 모두 일상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온고(溫故)는 하되, 지신(知新) 역시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주신 세 번째 계율을 이렇게 대체한 데 대해서 생전에 아버지는 이렇다할 말씀이 없으셨지만, 묵시적으로는 동의하신 것 같다. 아버지 스스로가 항상 새로운 공부거리와 취미를 찾으셨으니 말이다.
깨알같은 글씨의 ‘家信’
아버지는 내 공직생활의 3계(三戒)를 내려주시는 데 그치지 않고 충실한 모니터와 정책조언자의 역할을 도맡아 해주셨다. 바둑은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수를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아버지의 이런 도움 덕택에 내가 어느 공직에 있든 그 부처의 공보관실은 꽤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보관실에서도 빠뜨린 기사를 아버지께선 꼬박꼬박 스크랩해서 당신의 의견과 함께 내게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특히 원고지 뒷면을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채운 ‘가신(家信)’은 주의 깊게 정독했다. 좋은 정책제안이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빈곤의 세습을 막으려면 영세서민의 자녀들에게 기능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지적에 시립기능훈련원을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고, 장애인 대책을 하도 강조하셔서 수화를 배우기도 했다.
아버지는 또한 내게 최고의 자문역이셨다. 아버지가 정치를 떠나실 때 나는 앞으로 공직생활을 해나가면서 나의 진로를 포함해서 중요한 일은 모두 아버지에게 상의 올리고 자문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1980년 공직을 그만둔 이후 지금까지 24년의 세월 동안 일곱 번, 모두 합쳐 10년 남짓 공직에 있었다. 관(官)과 민(民) 사이를 일곱 번이나 왕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러한 약속은 잘 지켜져왔다. 다만,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조치에 찬성할 수 없어 사표를 낼 때에는 시간 여유가 없어 사전에 아버지께 상의드리지 못했지만 직후에 보고를 드리고 추인을 받았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있던 10여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정부 주변의 단체장이나 대기업의 임원 자리를 맡은 적이 없다. 지금도 국제투명성위원회(TI)의 자문위원과 환경포럼의 대표 이외에는 다른 일을 맡지 않고 있다. 이러한 처신에 대해서는 부자간에 견해가 일치해 특별히 의논할 일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공직에 나아갈 때에는 달랐다. 내 진로에 관하여 부자간에 의견이 항상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뜨거운 격론도 벌였고 두어 번은 내내 견해가 상반되기도 했다.
그중 한 가지가 서울시립대 총장과 관련한 일이다. 1990년 말, 서울시립대 교수들이 수서 특혜사건에 저항하다 시장직을 떠난 나를 총장으로 영입하기로 하고 선거를 거쳐 총장 후보자로 뽑은 뒤 교육부에 상신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수서 특혜와 관련한 압력을 거부한 데 대한 청와대의 불쾌감을 인지한 교육부는 청와대 상신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청와대에서는 수석비서관들을 보내 후보 사퇴를 종용했다.
청와대의 압력과 아버지의 반대
처음에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아버지 역시 청와대의 압력에 굴하지 말라며 격려해주셨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고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청와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권부와 대립각을 세운 총장으로서는 교수들이 바라는 대로 학교중흥을 이룰 수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아버지는 청와대의 압력에 굴하는 일이라며 그러한 내 판단에 반대하셨다. 그러나 결국 나는 서울시립대 총장직을 맡지 않았다.
평생을 현실 속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을 지키며 공직자의 길을 걸어온 나와 달리, 아버지는 높은 정신세계 속에서 유유자적한 분이셨다. 한때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한국철학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현실에 참여하기도 하셨으나 마음은 내내 철학의 세계에 머물렀던 듯싶다. 실존철학을 한국 철학계에 처음 심어주셨고 아울러 불교의 선사상(禪思想)에 심취해 이 둘을 사상적으로 잇고자 하셨다. 학술원상을 받으신 저서, ‘선(禪)의 세계’는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불교의 선사상(禪思想)으로 용해시킨 저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내장산 암자에 칩거하시면서 완성한 책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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