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봉준호, 류승완과 친해

-영화계에서 일종의 ‘사단’을 이룰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감독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박찬욱, 봉준호, 장준환, 류승완, 임필성 감독과 정기적으로 DVD를 보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름이 ‘자랑과 험담’이에요. 만나면 자기 자랑하거나 남을 험담한다고 해서(웃음). 모두 장르 영화를 좋아하고 이른바 영화광들이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아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예전엔 자주 만났는데, 지금은 서로 터무니없이 바빠져서 시사회 때나 전부 보는 정도입니다.”
-듣고 보니 ‘자랑과 험담’ 멤버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는 것도 있네요. 시나리오 구상은 어떻게 하나요?
“살면서 느꼈던 의문, 인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조용한 가족’도 우연히 신문에서 본 ‘휴지통’ 같은 작은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불륜 남녀가 있는데 한 친구에게 그 사실을 고백을 한 거예요. 그런데 이 친구가 오히려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려고 했죠. 그래서 남녀가 이 사람을 살인해서 유기했는데, 또 그 광경을 지인이 본 거예요. 이 사람도 협박해서 돈을 뜯으려 하니까 또 죽여 유기했죠. 어쩔 수 없이 연쇄살인을 벌인 후 유기해야 하는 상황, 또 사랑하는 남녀가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연쇄살인을 해야 하는 부조리함이 참 흥미로웠어요. ‘달콤한 인생’도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용무’ 보다가 읽은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무도 아닌 네 마음이다’라는 한 스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런 것들을 이야기 안으로 끌고 들어와 시나리오로 만들어내는 거죠.”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부터 구체적인 배우를 염두에 두는 편인가요? 배우를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뭡니까.
“연기력은 기본이고, 그 다음은 느낌인 것 같아요. 직관 또는 직감이 작용하죠. ‘장화 홍련’의 염정아씨는 사석에서 만났을 때 무척 털털하고 성격 좋고 재미있어요. 그런데 막 깔깔대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무슨 냄새 안 나요?’ ‘무슨 소리 안 들려요?’ 하더라고요. 이런 민감한 듯한 느낌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것은 그대로 사이코틱한 새엄마 캐릭터로 나타났죠. 이런 느낌을 매우 중요시해요.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들의 캐릭터를 맞바꾼 적도 꽤 있어요.”
감독의 독창성 인정해야
-데뷔 이래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혹시 다음 영화로 정통 멜로물을 찍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멜로영화를 참 싫어했는데, 최근에 너무 괜찮은 멜로 영화 두 편을 본 후 마음이 흔들리고 있어요. 그중 하나인 ‘클로저’는 사랑에 푹 빠졌을 때의 집착, 강렬한 감정이 액션과 가깝다는 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쿨하면서도 매우 강렬한 슬픔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어요. 그 정도의 이야깃거리라면 멜로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차기작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는 않았어요.”
-감독으로서 우리 영화계를 바라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사실주의 영화에 대한 프리미엄이 너무 많아요. 장르 영화를 경시하는 풍조도 있고요. 같은 완성도라도 사실주의 영화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사실주의적 관점으로 장르 영화를 재단하려고 하죠. 한 나라의 영화가 발전하려면 다양하고 훌륭한 장르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해요. 또 감독의 독창성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비교하려는 편협한 시각도 있어요. 특정 감독을 놓고 ‘김지운은 이 사람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식이죠. 제 영화적 목표가 어떤 감독을 따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건데, 영화 자체에 대한 완성도를 이야기하지 않고 남의 영화와 비교해 보려고 하죠. 비빔밥을 만들었는데, 쇠고깃국 맛이 안 난다고 투덜대는 것과 같아요.”
김지운 감독은 독신이다. 20년 가까이 혼자 살다 보니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지만 이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아직 미혼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만난 김지운 감독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특히 피부가 무척 맑았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 인터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김지운식 유머의 핵심이기도 한 ‘부조리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아주 ‘조리한’ 답변이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을 보고 제 또래들은 눈쌀을 찌푸리지만 저는 오히려 무척 멋있다고 생각해요. 전 새로움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대뇌가 젊게 돌아가고 스트레스 안 받고 신진대사가 잘 이뤄지니 피부가 맑아지고 노화도 오지 않는 게 아닐까요? 인체 기관 중 가장 보수적인 것이 눈이라고 해요. 눈이 늙기 시작하면 몸도 늙는 거예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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