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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은 데뷔 이래 다양한 변신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야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좌측부터 ‘장화 홍련’ ‘쓰리’ ‘반칙왕’ ‘조용한 가족’ ‘달콤한 인생’.
-강렬하고 아름다운 영상에 집착하면서 내러티브가 약해진 것은 아닙니까.
“이상하게도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 때는 저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하더니 ‘장화 홍련’과 ‘달콤한 인생’ 때는 이야기를 포기한 채 ‘때깔’에만 집착하는 감독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영화에서 한 번도 이야기를 포기한 적이 없어요. 이미지로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를 실험해본 것일 뿐이죠. ‘달콤한 인생’은 내러티브가 탄탄한 영화입니다. 또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 때처럼 아주 의외의 상황, 가장 긴박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유머가 튀어나오게 했죠.”
‘달콤한 인생’은 4월23일 일본에서 개봉해 무척 ‘잘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한류의 본체라고 하는 이병헌 덕분이다. 김 감독은 4월 중순 프로모션차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 가서 한류를 직접 체험하고 왔는데, 어떻던가요?
“한마디로 말해서 환상적인 경험이었죠. 물론 한류의 본체 옆에 ‘곁다리’로 낀 거지만. ‘달콤한 인생’ 기자 시사회를 시내에 있는 백화점 옥상에서 했는데, 전날부터 일본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고요. 백화점 입구마다 사람들이 가득해 007 작전하듯 옥상까지 올라갔죠. 기자회견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이병헌씨가 없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저한테 확 몰리는 거예요. 경호원이 뛰라고 하기에 열심히 뛰었어요.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함께 뛰면서 제 손에 선물과 편지를 덥석 쥐어주더군요. 봉투엔 ‘김지운 감독님께’라고 한글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어요. 이병헌씨가 아니라 제게 주려고 준비했다는 거잖아요. 정말 감동했어요. 나도 ‘지사마’가 되려나. 그런데 뜯어서 읽어보니 ‘이병헌씨한테 잘해주세요’라는 내용이었어요(웃음).”
그가 영화 주간지 ‘씨네 21’에 기고한 영화 제작기가 생각났다. 한때 영화 팬 사이에서는 김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제작기가 인기를 끌었다. 제작기를 보면 그를 왜 천부적 이야기꾼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기민 PD가 ‘장화 홍련’을 고딕 호러 스타일로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듣는 순간 필이 딱 꽂혔다. 주체할 수 없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흥분된 어조로 열변했다. 오 PD는 감탄스런 얼굴로 입을 연다. ‘그건 콩쥐 팥쥐인데….’ 악몽을 꾼다. 꿈에 네 명의 소녀가 하얀 소복을 입고 누가 콩쥐 팥쥐인지, 장화 홍련인지 맞혀보라며 나를 쫓아온다.”
‘김지운식’ 블랙 유머
-‘조용한 가족’ 때부터 ‘김지운식’ 블랙 유머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느 새 이게 김 감독의 영화를 규정하는 하나의 요소가 됐는데요.
“저는 영화에서 한 번도 웃음을 강요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웃음이 삐질삐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잖아요. 이런 것을 웃음의 소재로 써요. 예를 들면 중년 남성이 상사를 대접한다며 큰 원탁 같은 데 모시는 겁니다. 하지만 원탁이 너무 커서 음식을 먹으려면 팔을 무한정 뻗어야 하죠. 점잖은 자리에서 중년 남성들이 음식을 먹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상황, 거기서 오는 소통의 어긋남 그리고 부조리함. 따지고 보면 일상사는 다 부조리해요. 또 웃기고 슬프죠. 무언가에 대해 발동한 측은지심이 풍자가 되고, 그 안에서 해학과 웃음이 나옵니다. 세상을 ‘껄렁하게’ 보면 그런 식의 유머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김지운 감독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키드’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대여섯 살 무렵부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순신보다 말론 브랜도를 먼저 안 아이였다. 주말만 되면 아버지와 밤을 새워 영화를 봤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귀여운 아역배우 셜리 템플이 지금 유엔 대사이고, 리처드 버튼과 리즈 테일러가 최근에 다시 재결합했다는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다. 그런 정보가 쌓이니 더욱 영화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혼자서 영화관을 드나들었다. 액션영화, 성인영화 가리지 않고 봤다. 영화로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조숙한 아이에게 학교는 너무도 싱겁고 지루한 곳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를 ‘땡땡이’치고 극장에 다닌 듯하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언더그라운드’적으로 보냈다. 김 감독은 당시 자신을 “한마디로 양아치였다”고 회상했다.
1983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갔을 땐 배우가 되고 싶었다. 실제로 무대에 여러 번 섰다. 그러던 어느 날 무대 위에서 문제가 생겨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어둠 속 객석에서 트렌치코트를 입고 뿔테 안경을 쓴 연출가 선배 한 명이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그러고는 너무나도 단순 명쾌하게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말해줬다. ‘아, 정말 멋있구나. 이게 바로 연출가구나’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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