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연습은 그냥 취미 삼아 하는 것이었죠. 어린 마음에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부모님이 싫어하는데도 왜 자꾸 그걸 했느냐 하면 반항심이었죠. 기타를 그냥 하게 내버려두면 제가 지쳐서 안 할 수도 있었죠. 남들은 하는데 자꾸 못하게 하니까 반항심이 생겼어요. 집을 나온 것도 반항심 때문이었죠. 그런데 이 얘기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조용필은 경기도 파주시 장파리 미군부대 앞 ‘DMZ’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수습 밴드로 일을 하다가 용주골로 옮겨 미군 클럽 ‘첵돌스’에서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6개월이 지난 후 첵돌스는 용주골 최고의 밴드로 성장했다.
가출 2년 만인 1970년 여름 신문에 난 나이트클럽 광고를 보고 둘째형 영일이 찾아왔다. 형의 설득으로 집으로 돌아와 대학입시 준비를 하다 한 달 만에 음악의 인력(引力)에 끌려 다시 집을 나왔다.
부친 조경구씨는 1986년, 어머니 김남숙씨는 1991년에 세상을 떠났다. 3남4녀 중 여섯째로 막내아들인 조용필은 가수로 성공한 뒤 서울 논현동 아파트에서 부모를 모셨다.
-아버님이 그렇게 반대하던 가수가 된 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런 말씀 안 하셨죠. 과묵하신 분이죠. 말씀 안 하셔도 서로 알죠. 막내아들이 그렇게 성공할지는 모르셨죠. 그냥 미군 부대 근처에서 딴따라 하는 걸로 아시다가 제가 가수로 성공하자 무척 흐뭇해하셨죠.”
조용필의 첫 결혼은 4년 만에 끝났다. 첫 아내는 국회의원의 딸이었다. 팬과 가수의 관계에서 결혼으로 발전했다. 그를 잘 아는 기자가 “인터뷰 도중 첫 부인에 관한 질문을 하면 인터뷰는 그것으로 중단될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1988년 결혼한 재미교포 사업가 안진현씨와는 2003년 1월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깊은 사랑 속에서 살았다. 아내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가 1990년대에도 멈추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내조의 힘이 컸다. 미국 전 하원의원 김창준씨가 그의 동서다.
아내는 심장병을 앓다 사망했다. 조용필은 부인이 남긴 유산 24억원을 아내와 같은 고통을 겪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내놓았다. 그는 아내의 무덤을 화성 선산 부모 묘소 발치에 만들었다. 화성 선산에 갔다 밤을 새우고 오는 일도 많다.
-넓은 집(100평)에서 혼자 살려면 쓸쓸하지 않습니까.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 없어요.”
-주위에 재혼을 권유하는 사람은 없나요.
“재혼은 생각조차 않습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2세 없는 게 내 운명
답변이 너무 짤막짤막해 80개 이상 준비해간 질문이 거의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잡지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봐도 조용필은 질문에 비해 늘 짧은 답변을 했다. 필자는 “답변을 좀 길게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저는 그래도 평소보다 굉장히 많이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말수가 적다는 얘기를 들어요.”
조용필은 1982년 일본에 진출한 한류(韓流)의 원조다.
“아시아 뮤직포럼이라는 데서 초청해 처음 공연을 했어요. 아시아의 각 나라의 가수들이 와서 페스티벌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저를 선택한 거죠.”
그는 이후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일본에서만 골드 디스크 3장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600여 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공연이 대형화하면서 시각효과가 풍부해진 데 따른 장점도 있지만 작은 장소에서 인간적인 호흡이 오가는 야외공연 또는 소극장 공연도 했으면 좋겠다는 팬이 있더라고요.
“소극장 공연을 하면 장기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리가 돼요. 공연이 어차피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올해는 횟수를 줄이되 큰 데서 하자는 생각이었죠. 평양 초청을 받고 ‘제주에서 평양까지’라는 타이틀로 ‘필 앤드 피스’ 투어 공연을 기획했죠. 시장조사를 해보니까 지방에서 월드컵 경기장 공연을 하더라도 객석을 채울 수 있겠더라고요. 전반기엔 다 성공했어요. 네 군데에 12만명이 들어왔죠. 9월10일 대전 공연도 표가 거의 매진됐어요. 5만8000명가량 수용하는 경기장인데 유료관객을 5만명 정도로 잡고 있어요.”
-술을 잘한다던데요.
“옛날에 젊을 때는 많이 마셨죠.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못 마셔요.”
-두 차례의 결혼에서 자녀는 없지 않습니까.
“없죠.”
앤서니 퀸은 81세 때 증손녀뻘 딸을 얻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60대 후반에 자신 나이의 꼭 절반인 연인과의 사이에 손녀뻘 딸을 얻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