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포동 빌라촌에 있는 조씨의 집 근처에는 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아줌마 팬들이 종종 나타난다. 조용필은 해마다 12월이면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한다. 올해로 일곱 번째다. 매년 12회 공연 2만7600여 장 전석(全席)이 보름 전에 매진된다. 앞줄에는 일본에서 온 여성 팬들도 앉아 있다. 무대감독 윤호진씨의 목격담.
“어떤 아줌마가 공연장 뒤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춤을 췄어요. 보기엔 잘사는 아줌마 같지도 않고, 아마 돈을 모아서 티켓을 샀겠지요.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믿음이 깊은 신도가 예배당에 온 것처럼 진지하더군요.”
-팬레터가 지금도 옵니까.
“오죠. 특별히 사연이 있어서 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뭐 늘 우리 곁에 있어서 고맙다, 늘 함께해달라는 이야기 같은 것이지요.”
-집 앞에서 기다리는 아줌마 팬들은 어떻습니까.
“귀찮아요. 애들이 아니니까.”
-올 12월 예술의 전당 공연은 어떤 컨셉트로 할 계획입니까.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어제도 회의를 했는데 지금 시놉시스(줄거리)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하냐”고 생뚱맞은 질문을 던져봤다.
“전혀 모르죠.”
‘국민 배우’ 안성기와 중학교 단짝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에서 태어난 조용필은 화성 송산중학교에 다니다 2학년 때 서울 경동중으로 전학을 왔다. 아역배우로 일찍이 이름을 얻은 안성기가 같은 반 29번이었고 조용필이 30번. 한 책상을 쓰는 짝이었다. 안성기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먼저 학원에서 기타를 배워 조용필 앞에서 자주 연주해 조용필의 음악 혼에 불을 지펴줬다”고 주장했다.
“나는 집에 기타가 있었어요. 형이 치던 통기타였죠. 형이 캠핑 가면 밖으로 들고 나가 치기도 했죠. 집에서 좀 유난스럽게 쿵쾅쿵쾅 치다가 부모님한테 야단도 맞았죠. 정릉도서관에서 통기타 치는 애들을 만나 어울려 다니며 기타를 쳤죠. 그때 학생들 사이에서 기타가 크게 유행했어요.”
-그러니까 안성기씨 혼자서 음악 혼에 불을 지펴준 건 아니군요.
“기타학원에 다니던 성기는 저에게 일부분 영향을 줬죠.”
중학교 같은 반 동창인 ‘국민 배우’와 ‘국민 가수’는 가끔 골프도 같이 친다. 핸디캡이 10개로 같다.
조용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 공부를 하지 않고 집안 몰래 세광음악학원에 다니며 기타를 배웠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집안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때만 해도 대중문화라는 것이 그렇게 대중화돼 있지 않았죠. 소위 옛날 사람들이 얘기하는 딴따라였죠. 지금은 달라졌지만. 자기 자식이 머리 기르고, 복장도 아주 불량스러워 보이고, 음악을 한다는 것이 노인네한테는 정서적으로 안 맞았죠. 평범한 가정이나 좀 의식 있는 집안의 자녀는 기타 치는 짓거리 안 한다는 인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아버님이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할 리 없죠. 늘 ‘너 이 다음에 뭐가 돼라, 훌륭한 사람 돼라’는 말씀이셨거든요. ‘너 딴따라 돼라’ 하는 부모는 없을 때니까요. 그 시절의 시대상이에요.”
-자살 소동을 벌였다면서요.
“음악을 못하게 하니까요. 그때야 어렸을 때니까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 아닙니까.”
-누구한테 발견됐습니까.
“부모 모르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아셨죠.”
-약을 드셨습니까.
“약 먹었죠.”
-병원에서 깨어난 건가요.
“네. 정릉에 살 때였어요. 시골 화성에도 집이 있었죠. 아버님은 속이 상해 화성으로 내려가셨죠.”
기타 마니아가 돼버린 조용필은 드디어 졸업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한양대 공대 기계과에 다니던 형의 제도기를 몰래 들고 나와 청계천에서 처분했다. 그 돈으로 음악을 위한 가출을 단행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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