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의 휴대전화에서 ‘사계’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그의 아내가 전화를 했다. 앞서 인터뷰 요청을 거절할 때와는 딴판으로 목소리가 아주 정겨운 톤으로 바뀌었다.
“응, 나 인터뷰 중인데. 왜? 그래, 그래, 응응~.”
▼ 국내외에 호적수나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작가란 각자 독립된 존재니까, 호적수니 뭐니 하며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색깔이 다르고 자라온 배경과 시대배경도 다르니까. 들판을 보면 작은 풀꽃도 있고, 큰 나무도 있듯이 말입니다. 다만 동시대에 같이 활동하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이문구 선생을 꼽고 싶어요. 저는 그분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고 존중합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장점들을 갖고 있거든요. 그가 이 세상에 없는 게 참 아쉽습니다.”
▼ 해외 작가로는 어떤 이들을 좋아합니까.
“훌륭한 작가가 많죠. 그런데 요새 서구 문학이 ‘매가리’가 없어요. 오히려 서구문학이 주변부인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문학에서 수혈받고 있는 느낌이에요.”
▼ 황 선생께서도 그런 주변부 문학을 높이 사는지요.
“저는 라틴문학을 특히 높이 칩니다. 환상문학도 좋지만, 잉카·아즈테카 문명을 바탕으로 정복자의 언어인 스페인어로 세계의 보편성에 도달하는 라틴 문학이 흥미롭습니다. 지난해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제에 50개국 83명의 작가가 참가했는데, 그들이 자국의 생생한 현실을 끌어안고 있는 것을 보고 서구문학이 얼마나 오만하게 일방적으로 세계를 자기화해왔는가 하는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베트남전쟁 외엔 큰 전쟁도 없었고, 살상도 없었다고 아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세계 37개국에서 분쟁이 있었고, 이 기간에 1200만명 이상이 살상됐어요. 콩고 내전에서 400만명, 르완다 내전 때는 3개월 만에 100만명이 죽어나갔습니다. 또 미국의 봉쇄가 이뤄진 10년 동안 북한에선 300만명의 동포가 아사했습니다. 전쟁과 다를 게 뭐가 있나요. 유엔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12억명이 넘습니다. 국제 교역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가 바로 무기입니다. 우린 그런 현실을 망각해왔습니다.”

“실수 저지를 용기가 젊음의 비결”
▼ 전북 진안에 황석영 문학촌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문학촌 전망이 뚜렷하지 않아 일단 접었습니다. 아내나 지인들도 당분간 사회봉사보다는 창작에 전념하는 게 좋겠다고들 합니다.”
▼ 마지막으로, 황 선생께선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한국 중산층은 이미 너무 잘살고 있죠? 런던과 파리에서 몇 년 보내면서 만난 중산층 이웃들은 아주 검소했습니다. 온 가족이 한 달에 한 번 외식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해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잘 살고 돈을 흥청망청 쓰는 편입니다. 검소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은가요. 저는 북구(北歐) 형태의 삶이 참 괜찮은 것 같아요. 약간 심심하고 쓸쓸한 정도의 검소한 생활이 정말 잘사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생애 대부분을 집 사고 아이들 대학 보내는 데 바칩니다. 그 두 가지에서만 놓여나도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겁니다. 그러면 가족이 여행도 다니고 책도 읽고 전람회나 콘서트에도 가며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두어 시간의 인터뷰 내내 그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술 담배를 얼마나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답이 재미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대요. 젊은 시절에 저지른 실수를 거듭해서 저지를 수 있는 용기와 각오가 있는 사람이면 그는 젊은 거래요, 어허허허. 그러니 내 젊음의 비결이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창조적인 열정을 끊임없이 자기 내부에서 퍼내면 그것이 사람을 늙지 않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폭삭 늙겠죠. 하지만 지금 저는 생애 가장 왕성한 창작욕에 불타고 있거든요.”
그가 자의반 타의반 작가로서 글을 쓰지 못했던 시기는 거의 15년에 이른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몇 년간의 사회운동(그는 ‘사회봉사’라고 표현), 5년간의 망명, 5년간의 감옥생활 동안 그는 사실상 작가가 아니라 행동가였다.
“그러니까 사실 지금이야말로 혼자 집필실에 틀어박혀 왕성하게 쓸 수 있는 시간과 때를 만난 거죠. 건강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한 20년은 더 쓸 거예요. 그때면 86세가 되니, 세계 최고령 현역작가가 돼보고 싶어요. 누가 사주팔자를 따져보더니 향후 20년 동안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그래요. 명도 길어 90대 중반까지는 간다니까 한 10년은 유유자적하면서 생애를 보내고 싶어요.”
황씨는 그 어느 때보다 창작 엔도르핀이 왕성하게 분비되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밥바라기 별’이 연재되고 있으니 그 소설을 읽는 독자도 행복해질 것 같다. 삶의 진실을 찾아 모순된 사회에 맞서 치열하게 살아온 노작가의 열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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