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경영' 관련 코너에 가면 무수한 경영이론서들이 꽂혀 있다. 저자들 대부분이 서구(특히 미국)의 경영학자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책들에 실린 내용들은 다 좋은 얘기고 다 옳은 얘기들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술을 통해 한결같이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늘 하던대로 하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무수한 경영혁신이론들과 방법론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있어 최대의 자원은 인간이다>라는 P. F. 드러커의 격언이 유효하다면, 결국 혁신의 성패는 '사람 관리'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서구인들과 문화적 배경이나 기질이 다르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인과도 다르다. 이것이 바로 외국의 경영이론을 통째로 들여와서 적용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나는 한국인들 특유의 내면 인자와 결부된 새로운 리더십의 모델이 제시되고 산업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음과 기(氣)와 정(情)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나는 여기에 안정감과 온기와 활력을 잘 조화시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해낼 수 있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心)은 '안정'이라는 인자와 반응해야 하며, 우리가 흔히 '끼'라고 얘기하는 기(氣)는 활력과 어우러져야 하고, 정(情)은 온기(따스함)과 합쳐져야 한다. 이렇게 心, 氣, 情이 '안정'과 '활력'과 '온기'와 만나면 상호간에 반응이 일어난다. 이 반응은 다시 응답의 형태로 이어진다.
이런 상호작용들이 모여서 세(勢)를 형성하게 되고, 이 세(勢)를 상승세(上昇勢)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그것은 거대한 강줄기의 흐름과도 같은 '밀어붙이기'의 힘(POWER)을 만들어낸다.
이것들은 책상머리의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천과정에 얻은 귀한 교훈이다.
77일간의 격렬한 파업 끝에 회사 주인까지 바뀌는 뒤숭숭한 상황에서 나는 한국전기초자에 경영책임자로 부임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이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일자리를 만들려고 왔지 사람을 내쫓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고용을 보장하겠다." 때마침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거리에 넘실대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의 '고용보장' 약속은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에 적잖은 작용을 했을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안정감은 사원 부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통해서 각 가정으로 전파되었다.

이어서 바닥에 처져 있는 사원들의 기(氣)를 살려내기 위해서 꺼져 있던 용해로를 재가동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재고품을 싼값으로 처분하거나 폐기했으며, 어지러운 생산현장을 인라인(In-Line)화 하여 기계 설비가 활기차게 돌게 만듦으로써 사원들이 활력감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또한 최고경영자와의 '정분의 교류'를 위해 새벽3시에도 현장으로 달려갔고, 사장실문을 열어젖히고 사원들과의 눈높이 대화를 시도했다.
전 사원들의 마음이 안정과 결합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이것은 잠자고 있던 끼를 발동시켜, 내가 제시한 혁신목표를 향해 '한 번 해보자'는 활력으로 나타났다. 이 활력을 한층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이 다름 아닌 '온기와 결합된 情'이었다. 최고경영자가 주문한 노동강도가 대단히 고통스러운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회사에는 '혁신장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거대한 세(勢)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생산현장으로부터 "수율이 저조하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원들 사이에 일의 재미와 성취의 보람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세(勢)는 빠른 시간 내에 생산수율 향상, 근무태도 변화, 부서간의 건전한 경쟁심, 3890을 위한 전사적인 노력 등 쉽게 꺾이지 않을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결국 이렇게 물결을 타게 된 상승세가 꾸준한 밀어붙이기의 힘이 되어 오늘까지 깊고 힘차게 흘러왔고, 혁신2기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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