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군대에서 나는 모공업고등학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

하지만 이글을 썼던 이유는 이 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눈물때문에 처음부터 눈물의 이야기를 쓰려고 이글을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1988년...

 나는 전북 이리에 있는 모 국립기계공업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된다.

모기계공고는 당시 우리나라에 국립으로 우리나라에서 3군데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 학교를 오게되었나?

나는 중학교때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못하고 항상 딴 생각만하고 장난기많은 소년이었다.

공부보다는  소설책이 좋았고, 공부보다는 어머니 도와서 일하는게 더 좋았다.

 

그런던중 축구를 하다가 발이 부러저 3개월을 기브스하는 사고를 당하게되었다.

학교는 가야했고 친구들 놀때나 공부할때 할것이 뭐 있나?

그래서 공부를 했고 순전히 할 일없어서 공부했다.

그러니 성적은 당연히 올라갔었고 다리가 거의 아물무렵 또 개구장이가 되려나 했는데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없나...

또 부주의로 또 다리를 다쳐서 기브스하게 되어 도합 7개월을 목발로 절름발이로 살아야했다.    정말 폭폭하고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형이 동생아 

 

"우리 형편에 갈학교는 이리(지금은 익산)에있는 모국립공고밖에없다...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해라!  그 학교는 시험도아닌  철저한 내신성적이니까  전체학생등수 30등안에만 들어라" 

 

형은 절실한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그 학교는 국립이라, 수험료도 안내고 기숙사도 있으니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그곳이 딱이다. 넌 몸만 가면 되는거니까  한번 죽었다 하고 해봐라.

난 그말만 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아픈몸  할일이 없어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형에게 처음으로 기쁨을 준것같아 참으로 기뻣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시골 촌놈!

눈이 휘둥그래지는것은 어쩔수없었다.

답답한 시골살다가 ,일만하는 시골에 있다가 도시에 올라왔으니 어쩌랴?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이리저리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니 시골촌놈..

세상이란 곳에서 시골때가 벗겨지고 ,머리가 조금크니 살짝은 겁이 상실해지지 않겠나?

형은 그렇게 고생하고,어렵게 신문배달하고 우유배달하면서 피와땀으로 살았는데 난 그생각은 추어도 못하고  하룻강아지 마냥 그렇게 살았다.

형에 반에 반만 이라도 열심히 살았으면...형의  처한 상황보다도 비하면 행복한 그시간을 난 허비했다...

 

내 나름데로 공부한다고 햇었다.

야간에도 했었고 ,새벽에도 해었는데  그 학교 첫번째 중간고사에서 꼴등했다.

55명 중에서 55등했다.

글쎄 나도 한다고 했는데..이럴수가?

이렇게 공부잘하는 학교였나?

아버지께서 통신표를 받아보시더니  "야 이놈아 꼴에서 첫번째는 해야지 꼴등이뭐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해라고해도 못하겠다....

 

그런던중 시간은 쉼없이가 2학년이 되어 2학기에 접어드는와중에 일요일 귀가시간을 20분어기는 일이 발생되었다.

시골집에서 막차를 타고 열심히 왔었는데도  늦은것이다.

그때가 2번제 늦은 귀가어기는 일이었는데  사감선생은 퇴사조치를 한다는것이었다.

남들은 4번도 5번도 봐주더구만...

이유는 너는 위험인물이라는것이었다.

지뢰같은 위험인물이었는데 이기회에  나가주었으면한다는것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소귀에 경읽기가 되엇다.

그때나는 큰사고는 치지않았지만 얼굴은 아주 불량한,세상의 때에절은 반항기가득한

소년이었던것이다.

 

형이 왔다.

군대 하사관으로 잇던 형이와서 어머니와같이 방을 얻어주었다.

철부지녀석은 딴짓거리하기가 쉬운  방을 고르려했고 형은 주인아주머니가 굉장히좋고

자취방 옆집사람들이 성실하고좋은 아주 선한 자취방으로 삭월세를 구해주셨다.

그당시 24만원! 결코작은 돈이 아니다.  한달에 2만원, 1년치 선불이었으니...

형은 박봉일 그 힘든 군대생활하면서 모은 피같은 돈을 못난동생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꼭 한마디를 하였다.

"동생아  !   형이 좋아서 이러는게 절대 아니다.

내 너를 지금 귓뺨을 때리고싶고, 죽도록 패버리고 싶지만 난 너를 믿는다.

이제부터  새로이 시작하는 너를 믿는다.

이러고도 정신을 차리지못하면 너는 내동생이 아니다.

부디 잘살고 잘 생활해라 "

 

정말로 미안했다.

할말도없었다.. 참으로 못난 동생일 뿐이었다.

그때 느낀것이 아무리 어떤일을 해도 졸업하기전까지는 조용히 절대 형이나

가족들에게 피해나 걱정을 끼치지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몇달이 흐른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돌아왔다.

자취를 하자보니 내마음처럼 혼자만 잘살고싶은데 그게 잘안되는날이있다.


 그전날 친구생일이라고 친구녀석들이 몰려와서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자취방이 아주난리 이런난리가없다.

나홀로 있을때는 정리정돈잘하고,항상 깔끔한 모습과, 형이 한번도 방 구해준이후

안와봤기에 언제올지모르는 형을 위해 준비를 해주고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전쟁터라는 말인가?

빨리 치우자.. 어서 치우자...팔을 걷어 붇이는순간

멀리서 당동딩동 ~~

누구람 ?

누구 손님인가하고  문을 열어주던 그순간 .

나는 얼어붙은줄 알았다.

세상에 형이다.

형이었다.

 

 

갑작스러운정도는 표현이 안되었다.

" 야 잘있었냐?

여기 근처 동기집이잇어 왔다가 들렸다.

잘살지  ㅎㅎㅎㅎ~~"

 

"형 ~~형 ~

잠깐만 ...

얼어붙은나는 말이 모기만하게나왔다.

 

"야 임마 !

네가 해주는 밥이나 먹고가자"하는 형은 내방문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문앞에 나뒹구는 술병들 ,,,

문을 여는순간 , 담배피우다 얼른끄고 상황을 파악하는 친구들 ..

뿌연 담배연기속에서 전쟁터가 된 방과 부엌을 보는형은 눈빛은 카리스마적인 그런눈빛도

아니었고 촉촉히 젖은 눈빛은 차라리 슬퍼보였다.

 

그어떤말로도 설명할수가없었다.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하는데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고 그저 이순간이 꿈이었으면...

 

형도 말이없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곤 다시왓던 대문으로 걸어가는것이었다.

"형!   형!  나는 뒷쫒아 나가 형을 불렀다."

묵묵히 가던형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몇초간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만 했다.

"형   간다"

그말하는 눈빛을 지금도 잊을수없다.

그리고는 말없이 형은 걸어갔다.

조금씩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모른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길이 없었다.

 

멀리 군복을 입고 쳐진 어깨를 가르며 걷는 형을 보며 눈물이 멈추질않았다.

우는 와중에도 형이 택시를 타주길바랬다.

기본요금이 600원, 이리역까지 형이 타고 가주길바랬다.

하지만 형은 걸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아마 형도 그당시 나처럼 울지않았을까?

 

차라리 몇대 맞고 욕이아 싫것먹었다면 그렇게 서럽지는않았을텐대....

 

 

나는 형을 보면 언제나 

"내자신과의 싸움에 강해져라"

형이 나에게 하는말인것같다.

내자신에게 절대 지지않는 강한 내자신의 주인으로 나에게 살라고 이야기하는것같다.

힘들고 냉정한 이세상을 살아가매  다른이들에게는 지더라도 철저히 내자신에게만은

더욱더 냉정하고 강한 그 정신으로...

 

형에게는 항상 빛진느낌이다.

살아가면서 천천히 갚아야지 ...

 

형만한 아우는 없다고한다.

하지만 내마음속의 스승, 형에게 한마디여쭙고싶다.

 

형만한 아우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이전쟁같은 삶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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