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코 안이다.

간밤에 거의 잠은 자지 않았지만 전혀 피곤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긴장도 긴장 이었지만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 뿐이었다.

그래.  15일만 버티면 모든것이 끝나는 것이겠지..

어쩌면 희망이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대장과 선임하사, 나 그리고 김상병은 이렇다할 말이 없었다.

좁은 티코 안에는 흘러 나오는 노래가 있었다.

처음 듣는 이 노래는 나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귀에 너무도 간절하면서 아쉽게 들려오는 이 노래는 무엇인가?

그것은 팝송이었다. 애절하면서도 리듬이 서글픈 이 팝송은 무어란 말인가?

전주가 길면서 애답게 부르는 이 여가수의 목소리는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소대장에게 다시 한번 틀어 주기를 부탁 했다.

한번 더 들으니 너무도 좋았다. 제목을 묻자 " 포논 브론디스의 what,s up " 이란 것이었다.

너무도 좋아 두 번을 더 들으면서 목적지를 향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하자 시간이 남는 다면서 소대장은 점심이나 먹고 들어 가라고 했다.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렀다.  아무 식당에나 들러 김치찌개나 먹을 것이지 웬 레스토랑이나

했다. 소대장은 돈까스에 500cc  생맥주를 시켜 주었다.

나는 먹어도 쾐찮겠습니까?  물었다.  걱정은 되었다.

무얼 잘 했냐고 영창 오는 놈들이 술 냄새 까지 피우냐 . 그런 소리가 귀가에 닿을 것처럼

느낌이 왔다. 소대장은 어차피 한잔 먹고 간다고 크게 달라 질것도 없지 않느냐?

긴장 풀겸해서 한잔 하고 참아내라.. 그리고 기갑부대 깡다구 잊지 말라고 했다.

이시점에 기갑 깡다구가 무어냐?  내가 죽게 생겼는데...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 한잔의 생맥주가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이것이 휴가 나와서 하는 술자리 였다면 하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소대장은 한잔 더 할래, 말을 했지만 마실수가 없었다.

 

군복을 벋었다.  상병 계급장이 달린 나의군복은 어데인가고 가고 계급도 없는 유격복 같은 군복을 가져다 입으라고 했다. 그래 이곳에서는 계급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구나...

마지막으로 소대장이 잘 참고 견디라 했다. 그리고 15일 후에 너희들을 찾아오마...

그래. 이제부터는 아무도 모르고 아는이 없는 곳에서 나와 김상병만 남는구나.

그나마 김상병 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큰 다행이냐?

 

철창을 몇번 풀고 쇠문을 지나서 지하 2층쯤 되는 곳으로 우리는 당도했다.

쇠로된 칸막이가 6군데로 분리된 그 곳중에 마지막으로 된 곳으로 우리는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5군데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우리를 쳐다 보았다.

웬지 부러운 눈빛이었다.  같은 처지 같은데 그 눈빛은 분명 부러움에 눈빛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부러운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계급이 없는 훈련복 차림에 도 닦는 스님처럼 앉은 자세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쇠창살 맨위에는 감시카메라 인듯한 카메라가 있었고 귀퉁이로 작은 화장실 인듯한 곳만이 유일하게 있었다.

작은 사면은 모두 쇠로 되있었다.그리고 이등병에 목소리가 들렸다.

 

이병이 말하길  " 너희들은 이제 부터 15일간 이곳에서 생활해야한다.

하루 17시간씩 잠자는 시간 빼고는 수양하고 이제까지의 부대에서의 일들을 반성하고 참회해야한다.그리고 그 반성하는 모습이 우리 헌병들에게 보이지않고 탈선(?)을 행하면 그 에 따른 댓가(?)가 치루게 될것이니 그 때는 우리를 원망하지 말아라!  " 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랬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이등병 ** 가 어데서 까불고 있냐는 생각을 했다.

이병이면 정말 젓비린내 나는 군번이 아니던가...

정말 그랬다.  그리고 앉아만 있는 것이라면 그리 힘든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앉아만 있는 것인데 뭐가 그리 힘들것이냐  는 자신감도 생겼다.

주위에 몇 사람들도 잘만 앉아 있는데...

 

30분이 지나자 그 생각은 저 만치 가버렸다.

오금이 저리고 무릎과 허리, 엉덩이가 아파서 견딜수가 없는 것이었다.

제발 한번만 다리를 좀 펴봤으면 ... 제발 한번 기지게 라도 펴봤으면...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갔다.  헌병은 통로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반복하며 걷고만 있었다.

우리 있는 곳을 피해서 가거든 제발 한번만 다리를 펴봤으면 소원이 없었다..  했다.

그렇게 견디다 한번은 운좋게 다리를 폈다.  그리고 다시 원위치 했다.

그것도 잠시 10분 후 부터 저려오는 다리를 어떻게  참기가 고통이었다.

우리방에 있는 동료들은 눈치껏 무슨 요령이 있는지 잘들 참고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참기가 힘든 고통에 다리를 한번 움직이다가 헌병에게 제대로 걸렸다.

쌍소리와 함께 철장 앞으로 오라는 헌병에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카메라 바로 밑으로 가까이 오라 하더니 나지막하게 하는 소리가 있었다.

" 네가 첫날 이라서 무얼 몰라서 그런가 본데 이리 와바라.."

박달나무 봉으로 만든 그 방망이로 목, 어깨, 허벅지, 장단지, 살들이 많은 곳만 집중적으로 가격하는 것이었다.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행여 멍자국이 나지 않도록 부위만 골라 때리는데,   이것이었구나 !  이런 고통이 기다린 것이었구나...

그래..  편하고,  피하려고 왔던 곳이 아니었구나.

이병을 구타했다고  구타로 영창을 왔는데, 내가 지금 새파란 이병에게 맞고 있구나.

피가 거꾸로 솟는 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염없는 서러움의 눈물이 얼마나 쏟아 졌는지 모른다...

 

그렇게 몇차례 김상병도 나도, 같은 방 동료들도 맞았다.

그것은 눈 뜨고는 차마 볼수가 없었다.

 

이러니 다리가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나마 밤 2시간은 수양록 이라고 지은 죄를 참회하는 글을 쓰라는 시간은 그 나마 나았다.

무얼 쓰라는 말인가?  내 처참하고 참담한 마음을 글로 쓰라는 말인가?

정말 솔직하게 써볼까? 그래  삽자루 한대 친 댓가의 기분을 제대로 써볼까?

다른 생각은 필요없다. 쓰고 싶지도 않고 이순간이 그저 편하고 좋다.

엎드려 썼으니 피가 순환이 되었고 한결 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밤 열시는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새벽에 이것은 또 뭐라는 말인가?

이등병이 다 일어 서라고 하는 것이었다.  왜 천장만 바라보고 자지, 옆으로 돌아 누워서 자는 사람이 있냐는 것이다.   " 머리 박아라 ! "

아니면 또 맞는다.  까라면 깐다.  그래 잠도 제데로 자게 놓아두지를 않는 구나.

그렇게 길고긴 하루가 갔다. 잠을 자는 그 순간 만큼은 이런생각 밖에 들지를 않는다.

이건 꿈이다!  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아침이면 아무일도 없다...

그렇게 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꿈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아침 부터 눈뜨면 또 수양(?) 이다.

그나마 하루 지나니 상황 파악이 조금씩 되어간다.

저기 저 앞의 사람들이 우리를 왜 어제 부러워 했는지 알만 하다.

우리방은 길어야 15일인데, 저기 저 사람들은 휴가또는 부대에서 탈영 또는 강도, 큰 사고를 친 사람들이라 재판을 받아야 하기에 미결수 인것이다. 그러니 재판때까지 한달이고 두달이고 심지어 6개월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인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 한 사람들 이던가?   왜 어제 우리를 부러워 하는 눈빛으로 바라 보았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나 에게는 지금 이순간이 고통이다.  남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살아서 (?)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몇일을 버텨나갔다.

그동안 한차례만 맞았을 뿐이지 이제 어느 정도 조금은 적응이 된듯하다.

우리방에서 몇명이 나가서 좋은 명당( 헌병 눈을 피해 다리를 조금 쉴수 있는곳 )자리도 나에게 차지가 왔고 미결수가 아니었기에 식사시간에 나와 김상병이 배식도 할수가 있었다.

 

마음이 가장 아픈것은 아무 것도 않하는 그 곳에서 왜 그리 배는 그리도 고픈지 배식시간이 되면 이병 모르게 제발 밥좀 많이달라고 서로 아우성 되는 것이었다.

배식량은 엄청 작은데 서로 달라고 난리이고, 어떤 사람은 돈 까지 몰래 주면서 사정을 한다.

제발 반찬은 많이 필요없으니 밥 이라도 많이 달라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밥먹는 시간도 죄수라고 3분을 넘기지 않은듯 하다.

먹다가 입에 가득 씹으면서 나가는 사람, 이병에 다른 사람 먹어야 하니 어서 안나가냐고

박달나무로 휘두르고... 이 것은 사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가장 고생한다고 하는 몇분에게는  듬뿍 주려고 노력했다.

엄청 큰죄를 지어 십년은 넘게 생활해야 한다는 그 분들에게는 아낌없이 남보다 더욱 주었다.

그런게 고마웠는지 내가 다시 그곳을 나가게 되었을때  자대에 왔을때 고마웠노라는, 잊지를 못하겠고 언제가 고향에 한번 놀러 오라고 주소를 적은  편지 까지 왔었다.

 

그렇게 십일 가까이 견디니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이구나 ..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이라는 것이 어떤곳이든지 사는 구나,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나는 서서히 그 악몽같은 곳에서 적응을 해가고 있었다.

10일이 몇달은 지난듯 느껴졌다...

그러던중 11일만에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일이 생겼다.

토요일 오후 였는데 같이 쓰는 6개방의 동료들의 모포를 다 털어야 한다고 우리 방 동료들만 나가는 휴가(?)가 주어졌다.

11일만에  처음으로 나가는 행운을 얻은 것이었다.  아 !  바깥 세상이 이런곳이었구나..

밖의 군인들이 사회인처럼 느껴졌다.  같은 군인이 분명할텐대 나와는 정녕 다른 이들이구나!

세상은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어도 언제 그랬냐 는 듯 아무일도 없구나...

나 만이 세상에 동 떨어져 있구나...

그래 4일만 죽었다 하고 참자. 이제 까지도 잘 참았지 않은가?

모포를 터는데 먼지가 한 십년은 됨직하다. 냄새와 검은 색깔의 지저분함에 눈도 뜰수가 없었다. 이런 모포에서 이제껏 잤다는 말인가?

그래...   이 먼지가 내 마음속의 이제껏 고생 이라고 생각하고 다 날려 버리자..

깨끗하게....

그렇게  하루 하루를 또 이를 악물고 참았다.

분명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괴물이 사는 곳이 아니었기에...

 

드디어 15일이 지났다.

어떻게든 시간은 분명히 가는 것이구나. 고맙다   감사한 시간아...

훈련복을 벗고 다시 내 군복으로 갈아 입었다.

다시는 훈련복 따위는 입지 않으마,  내려놓은 훈련복을 보니 쫙 쫙 찢어 버리고 싶었다.

내 군복을 보니 상병 계급장은 분명히 달려 있었다.

그 계급장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

소중하다.. 내 상병 계급장...

 

소대장이 두부를 건냈다.

나는 고맙지만 치워 달라고 했다.

두부는 죄 지은 사람이 먹는 것이지 나는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소대장의 티코에 올랐다.

시동을 켜고 출발을 하는데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 포논 브론디스의  what,s up " 이었다.

계속해서 리바이얼로 나오고 있었다.

내마음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준비 하셨을까?

김상병과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아니 흘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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